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달 탐사 사업의 핵심인 궤도 설정 논의에서 이견을 확인했다. 항우연은 NASA와의 최종 협의까지 남은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제2의 대안을 마련해야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2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항우연, 과학기술계 등에 따르면 항우연과 NASA는 최근 대전 유성구 항우연에서 열린 '달 탐사 사업 기술 회의'에서 탐사선 궤도 설정 등 주요 현안을 논의했지만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회의는 16일부터 사흘간 진행됐다. 양측은 궤도 설정 등 핵심 현안 협의에서 달 탐사 궤도 운영 방안을 두고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항우연은 과기정통부가 지난 9월 심의 확정한 '달 탐사 사업계획 변경안'에 담긴 궤도 운영 방안을 제시했다. 당초 원궤도(장·단반경 100㎞)에서만 운항하도록 한 계획을 바꿔 9개월은 타원궤도(장반경 300㎞, 단반경 100㎞)에서, 3개월은 원궤도를 운행하는 내용이다. 이럴 경우 당초 계획 대비 연료를 절감할 수 있다.
NASA 측은 항우연 계획에 '최적 대안이 아니고 선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촬영 데이터를 충분히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항우연 계획대로라면 달의 북극 지점을 지날 때 당초 대비 고도가 3배나 높아져 촬영이 어렵다.
NASA는 달 탐사 궤도는 당초 계획을 유지하되 궤도까지 진입하는 항로를 변경하는 대안을 꺼냈다. WSB(Weak Stability Boundary) 전이 궤적을 포함한 2개안을 언급했다.
다만 양측은 연료부 크기, 중량 등을 포함한 설계 변화는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
항우연은 NASA가 다른 의견을 내놓음에 따라 기술적으로 타당한 대안을 도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항우연은 NASA와 다음달 18일 마지막 기술 협의를 한다. 과기정통부는 이 자리에서 NASA와의 협의해 최종 사업계획안을 확정한 뒤 12월 상세설계검토(CDR)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과기계에선 항우연의 대안 마련이 녹록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가 구상한 타원궤도는 NASA측이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순수 원궤도를 택할 경우 WSB 등 대안 궤적을 택해야 하는데 기술적 난제가 많다. WSB 궤적을 택할 경우 지구로부터 최대 150만km까지 멀어지며 전이 기간도 3∼4달 정도로 길어지기 때문에 통신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한다.
과기계 관계자는 “현재 NASA가 제시한 대안에 대한 시뮬레이션, 상세 분석을 진행할 시간이 충분할 지 의문”이라면서 “만약 분석을 거쳐 타당하다는 결과가 나와도 우리나라가 수행하기엔 상당히 고난도의 계획”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우리에게는 처음 시도하는 일이고, 실제 적용에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지만 가능성이 없지 않다”면서도 “NASA측의 지원이 전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명호 항우연 노조위원장은 “올해 3월 WSB 궤적 등을 포함한 다양한 대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내부 의견이 있었지만 결국 지금까지 허송 세월만 보냈다”면서 “현 상황이라면 CDR 등이 연쇄적으로 다 지연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NASA과의 협력이 지속되리라는 보장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NASA측이 WSB 궤적을 택할 경우 기술 지원을 언급하기도 했다”면서 “시간이 촉박한 것은 사실이지만 NASA와의 협력 관계 등을 고려하면 합의를 기반으로 원만하게 계획을 진행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