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디지털통상 규범을 마련하기 위한 국제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르면 내년 세계무역기구(WTO) 차원에서 디지털통상 방향성을 담은 '컨센서스'가 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최종 타결된 미·일 무역협정에서도 서버 현지화 금지 등 디지털무역 규범을 포함하면서 주요국 협상에 영향을 미칠 예정으로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우리나라 등 세계 80개국은 지난달 24~27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열린 'WTO 전자상거래 규범협상' 회의에 참여했다. 주요국은 '데이터 지역화' 등 세계 전자상거래 주요 쟁점에 대한 '통합 텍스트'를 만들고 의견을 개진했다.
세계 주요국은 이번 달과 다음 달에도 WTO 전자상거래 규범협상 회의를 열 예정이다. 이르면 내년 WTO 차원에서 전자상거래 방향성을 담은 컨센서스가 마련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내년 6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WTO 각료회의에서 암묵적으로 컨센서스를 내는 것을 목표로 협상을 이어 가고 있다”고 밝혔다.
전자상거래 규범 협상은 세계 디지털 통상 규범 정립을 위해 WTO 차원에서 열린 세계 첫 다자회의다. WTO는 1998년 '전자상거래 작업계획'을 채택했지만 이후 20년 동안 디지털통상 관련 논의는 공전됐다. 그러다 지난해 디지털통상 규범 정립을 위한 비공식 회의를 아홉 차례 열면서 논의의 물꼬를 텄다. 올해에는 5~7월 세 차례 WTO 전자상거래 규범 협상이 열리고, 각국이 전자상거래 관련 공식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거대 플랫폼과 공정거래 생태계 조성, 분쟁 해결 메커니즘 구축, 디지털 권리 침해 구제를 위한 협력 체계 마련, 전자상거래 통관 절차 간소화 등 의견을 제안했다.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대해서는 공정 경쟁을 적용하지만 전자상거래 분야 전반에 걸쳐서는 자유화 원칙을 주장한 것으로 풀이된다.
WTO 외에도 디지털통상 규범 정립을 위한 협의에 속도가 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지난달 최종 타결을 선언한 미·일 무역협정에서 디지털 무역 관련 규범을 다수 포함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국경 간 데이터 이전 자유화, 서버 현지화 금지, 소스코드 및 알고리즘 요구 금지, 플랫폼사업자 책임 부과 금지 등 조항이 포함됐다.
아시아·태평양 역내 국가 간 모임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도 우리 정부 주도로 역내에서 개인정보를 안심하고 맡기는 '마이데이터 이니셔티브' 등이 논의되고 있다. 김용래 산업부 통상차관보는 “10년 전만 해도 세계 기업 가치 상위 10개사 가운데 7개사는 에너지 기업이었지만 최근에는 7개사가 데이터 기업으로 변모했다”면서 “자유로운 데이터 교환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드는 자원인 만큼 우리 주도로 데이터 자유화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