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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용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세라믹 PD

필자가 전자신문 등 언론에 소재 관련 기고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주요 제목만 추려 보면 '세라믹과 대일 적자' '소재산업이 국가 경쟁력이다' '소재산업의 불편한 진실' '부품소재특별조치법 연장돼야' '세라믹산업 육성 시급하다' '될성부른 떡잎, 세라믹 3D프린팅 기술' '만화 열혈강호와 4차 산업혁명 그리고 세라믹 소재' '세라믹 소재 전쟁' 'MoT(Materials of Things) 시대, 소재 경쟁력 강화해야' 등이다.

한국세라믹기술원 연구개발(R&D) 현장에서 연구원으로서,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R&D 기획담당 세라믹 PD로서 지난 10여년 동안 피부로 느낀 우리나라 소재 산업의 민낯을 나름대로 외쳐 보았다. 나비효과 덕분인지 부품소재특별법은 10년 추가 연장됐다.

그러나 완제품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의 상당량을 핵심 원료·소재를 독과점하고 있는 일본에 바쳐야 하는, 일명 '가마우지 경제구조'는 도무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쉬지 않고 달려왔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소재 산업의 불편한 진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결국 사달이 났다.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4일 우리나라 주력 수출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라는 도발을 시작했다. 8월 28일에는 한국을 일본 안보상 우호국인 '백색국가'에서 제외함으로써 약 1200개 품목이 졸지에 수출 규제 대상이 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우리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하고,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라는 맞대응으로 힘겨루기하고 있다.

어쨌든 상대가 장군을 불렀으니 우리는 멍군을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수준의 국내 대기업들이 핵심 소재 수입처 다변화 추진과 동시에 기술력이 괜찮은 중소·중견 소재 업체를 새삼스레 살펴보기 시작했다. 굉장히 바람직한 시그널이다.

정부도 소재 개발에 추가경정예산(추경) 투입을 결정했다. 1년 반째 진행되고 있던 소재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대상의 전략 과제 일부를 심사에서 면제시켜 핵심 소재 개발과 상용화를 최대한 앞당기기로 했다. 소재·부품특별법을 소재·부품·장비 특별법으로 개정하고 7년 동안 7조8000억원을 경쟁력 강화에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 관련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국회에 입법예고 됐다.

우리나라 소재 산업 입장에서는 전화위복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재 기술의 중요성이 방방곡곡에 메아리치니 일본 정부가 멍석을 깔아 준 셈이다. 일본의 종속에서 벗어나 '소재산업 독립'을 위한 티핑 포인트라 생각한다. 그러나 금방 일본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섣부른 자신감은 경계해야 한다. 빨리빨리 해내야만 한다는 조급함도 접어야 한다. 100년 이상 된 강건한 소재 기업을 많이 보유한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 바로 일본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신소재 상용화는 보통 10년 이상 R&D와 실증 단계, 꾸준한 투자가 필수다. 그럼에도 일본의 핵심 소재 수출 규제 사태 대응도 시급하다. 성과를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 이번만큼은 상용화 기술 확보에 무게중심을 둔 전략 접근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정부 R&D 성공률이 100%에 육박하는 기이함을 이번 기회에 타파해야 한다. 실패의 책임을 묻지 않고 무한도전을 독려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알키미스트(연금술사) 프로젝트'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낯선 시도지만 퍼스트 무버로 가는 첫발이며, 가마우지형 구조를 펠리컨형으로 바꿀 수 있는 시금석이 되어 주길 희망한다.

정부 R&D 전담 대표 기관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은 쓰나미처럼 들이닥치는 엄청난 예산 규모의 소재·부품·장비 분야 R&D 신규 기획과 지원에 차질이 없도록 모든 직원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파울루 코엘류의 '알키미스트'라는 소설에 나오는 구절 하나가 순간 스친다. “바로 이게 연금술의 존재 이유야. 우리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나아지기를 갈구할 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도 함께 나아진다는 걸 연금술사는 우리에게 보여 주는 거지.”

정봉용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세라믹PD jby67@kei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