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연구장비 국산화, 과학기술 주권 확보와 산업경쟁력 강화 열쇠

Photo Image
장기수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연구장비개발부장(책임연구원)

과학기술 발전 근간에는 연구장비가 자리하고 있다.

2025년 우리나라 전체 연구개발(R&D) 예산은 정부와 민간 부문을 포함해 약 1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에 따르면 매년 R&D 예산 약 5%가 연구시설·장비 구입에 사용되며, 이를 기준으로 하면 2025년에는 약 6조원이 연구장비 구입에 투입될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 중 상당 부분이 외산 장비 구매에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NFEC) 자료에 따르면 정부 R&D 예산으로 구축된 연구장비 외산 비중은 2016년 83.1%, 2018년 85.7%, 2020년 88.8%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민간 부문도 비슷한 수준의 외산 의존도를 고려하면 올해에만 약 5조원이 연구장비 수입을 위해 쓰일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은 단순한 재정적 부담을 넘어 우리나라 과학기술 자립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첨단 연구를 수행하려면 최첨단 연구장비가 필수적이지만 우리나라는 해외 의존도가 매우 높다.

예를 들어 액체크로마토그래피 외산 비중은 96.5%, 핵자기공명분광기(NMR)는 100%, 투과전자현미경(TEM)도 100% 달한다. 세계 최초 연구를 위한 연구장비가 필요한 경우 국내 기술로는 감당할 수 없어 해외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연구 아이디어와 기술 유출 위험도 상존한다.

연구장비는 단순한 실험 도구를 넘어 산업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연구장비로 핵심 기술은 첨단 산업장비로 전이되며, 연구장비 해외 의존도는 곧 산업 전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에는 반도체 기술 혁신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 첨단 반도체 제조공정에서는 나노미터(㎚) 단위 정밀도를 요구하기 때문에 반도체 패턴의 미세한 결함을 검출하고 공정 변수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측정·검사(Metrology & Inspection, MI) 장비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MI 장비는 수율 향상과 공정 최적화에 핵심 역할을 하며 반도체 품질과 직결된다. 그러나 국내 반도체 대기업은 MI 장비 95% 이상을 외산에 의존하고 있어, 기술 자립에 영향은 물론 공정 정보 유출 가능성까지 우려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국내 반도체 업계는 MI 장비 중요성과 해외 의존 위험성을 인식하고 국내 대학 및 정부출연연구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필자 또한 연구장비 개발 과정에서 확보한 광학현미경 기술을 기반으로 반도체 대기업과 협력해 반도체 결함 검사 및 불량 분석 장비로 활용하는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이는 연구장비 기술이 스케일업을 통해 산업 현장에서 실질적인 경쟁력을 갖춘 핵심 기술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기술 자립과 산업 응용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려면 연구장비 국산화를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정책 추진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핵심기술 확보를 위한 대규모, 장기 연구개발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

또 연구장비 기업의 R&D 역량을 강화하고, 국산 연구장비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평가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연구장비 테스트베드 및 실증센터를 조성해 국산 연구장비 성능을 검증하고, 연구기관과 기업 간 협력을 통해 국산 장비 도입을 촉진해야 한다.

연구장비는 과학기술 경쟁력뿐만 아니라 국가 산업 경쟁력을 결정짓는 중대한 요소다. 현재 우리나라는 연구장비의 해외 의존도가 심각하게 높은 수준이며,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를 방치할 경우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장비 국산화와 산업 육성은 선택이 아니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필수 전략이다.

장기수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연구장비개발부장(책임연구원) ksc@kbsi.re.kr

주요 행사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