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혁신 공적개발원조(ODA)가 우리나라의 새로운 ODA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ODA로는 풍부한 자금력을 보유한 다른 선진국에 비해 차별성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강점을 보이는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원조 받는 국가의 과학기술 발전을 돕는 것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더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다.
◇의무이자 기회 'ODA'
ODA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 경제·사회발전, 복지증진을 위해 행하는 원조를 뜻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가 1969년 ODA 정의를 도입했다. 최근에는 기후나 환경 같은 인류 공동 문제 해결, 공동 번영을 달성하기 위한 기반으로 받아들여진다.
ODA 공여는 국제사회에 속한 선진국이 짊어져야 할 의무다. 대체로 OECD가 선진국 모임으로 알려져 있는데, DAC 회원국으로서 ODA를 공여해야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우리나라 역시 DAC 회원국이다. 국제사회에서 선진국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ODA 수행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ODA는 당연히 인도주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러나 이를 통해 공여국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연대를 통한 상호 간 국가안보·외교이익, 나아가 경제이익까지 고려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1960년대부터 '대외원조법'을 통해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글로벌 안보 질서를 주도해 왔다. 냉전시대에 ODA를 이용해 제3세계 국가를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였다. 경제 측면에서는 원조 받는 국가에 진출 가능한 시장을 조성하고, 현지 자원을 쉽게 확보하는 기반으로도 활용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런 이유로 ODA 예산을 매년 늘리고 있다. 올해 ODA 예산은 3조2003억원으로, 작년대비 1521억원 올려 잡았다. 지난 10년을 따지면 4배 이상 증가한 금액이다. 문제는 이 규모로도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차별성이나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점이다.
◇ODA 핵심방안 '과학기술혁신'
다른 선진국은 자금력을 무기로 보건, 교육, 인프라 구축에 중점을 둬 ODA를 추진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일본 ODA 예산은 우리나라 10배, 캐나다와 호주는 4배에 달한다. 자금력으로만 따지면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다. 그동안 많은 차별화와 경쟁력 제고 노력이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과학기술혁신 ODA다. 관련 개념 수립이나 논의가 이뤄지기 전부터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이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 정립했다. 공여국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원조 받는 국가 내 과학기술혁신을 돕는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가 가진 과학기술혁신 경제발전 경험을 전수하는 것이 골자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강점을 보이고 있고, 실제로 과학기술을 통해 원조 받는 국가에서 원조를 행하는 국가로 수직 성장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첫 번째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1965년 미국의 경제원조로 설립했다. KIST를 비롯한 출연연은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이끌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설립과 발전 역시 개발도상국이 본받을 수 있는 모델로 손꼽힌다. 이런 우리 모델을 개발도상국에 전한다면 자금이나 식량을 주로 원조하는 다른 국가와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
과학기술혁신 ODA는 현재 세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2015년 이후 ODA 패러다임이 '새천년 개발목표(Milenium Development Goals·MDGs)'에서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SDGs)'로 바뀌면서 주요 ODA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원조 받는 국가 입장에서도 단순 원조보다는 과학기술혁신을 통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를 원한다.
강민호 한국기술경영연구원 앙코르코리아 사업단장은 “현재 개발도상국은 이전에 비해 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원조를 원하는 상황”이라며 “우리나라가 ODA를 통해 산업화를 이룬 경험을 갖춘 국가인 만큼 우리 과거 경험과 노하우를 ODA에 활용해 더 큰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과학기술혁신 ODA에 중점…과제는?
정부도 과학기술혁신 ODA 중요성을 인식하고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과학기술 ODA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은 STEPI가 KIST와 함께 만들었다.
KIST와 같은 종합연구기관, KAIST와 같은 과학기술특성화대를 유형별로 ODA 사업 모델화하고, 원조 받는 국가가 인프라 구축부터 운영 컨설팅, 인력양성, 공동 연구개발(R&D)을 수행할 수 있도록 종합 지원한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올해부터 '과학기술 ODA 10대 선도프로젝트'를 기획·추진한다는 계획도 함께 전했다.
현재 STEPI,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등과 '과학기술 ICT ODA 융합프로그램 협의회'를 운영하며 융합프로그램을 발굴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활성화를 이루기까지는 더욱 많은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대다수다. 우리나라 과학기술혁신 OECD 자료에 따르면 ODA 규모는 2017년 기준 2500만달러(약300억원) 수준으로 아직 크지 않다. 전체 ODA에서 비중이 2.4% 수준이다.
과학기술혁신 ODA 정책을 수립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이전보다 훨씬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다 정밀한 과학기술혁신 ODA 수행을 위해 어느 국가에 어떤 기술을 전해야할지, 세부 전략은 무엇인지 가늠하는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장규 전 에티오피아 국립 아다마대 총장은 “ODA 원조를 받는 곳이 실제로 어떤 부분을 바라는지 분석하고 정책 조언을 해주는 역할이 현재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STEPI나 대학과 같이 연구와 교육을 하는 곳이 과학기술혁신 ODA에 적극 개입해 전체 관련 정책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