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日 불매운동, 감정과 이성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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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이 촉발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장기화 양상을 띠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패션, 식품, 자동차 등 다양한 소비재 시장에 '노 재팬(NO JAPAN)' 태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마치 구한말 일제의 침략에 맞서 싸운 의병 운동을 연상케 한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아웃바운드(국외 송출) 관광 시장은 불매운동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여름휴가와 추석연휴에 일본 여행을 예약한 이들의 취소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위약금 등 일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일본에 가지 않겠다는 예약 취소자가 늘고 있다. 신규 예약 수요도 예년 대비 눈에 띄게 줄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 8월 한 달 일본을 오간 여객은 96만8686명이다. 전년 같은 달의 120만3835명 대비 19.5% 감소했다.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를 기치로 내건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분위기를 기반으로 불매운동을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는 유통업체도 늘고 있다. 일본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우는 한편 순수 한국 업체라는 것을 강조한다. 요식업계에서는 일본 여행을 취소한 고객에게 덤을 주는 등 애국 마케팅이 한창이다.

그러나 일부는 과열된 행동으로 불매운동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 최근 방문한 한 지역에서는 '일본인에게 상품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플래카드를 내건 음식점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일본 제품을 사지 말자는 운동이 일본 관광객에게 우리 상품을 팔지 않는다는 형태로 왜곡된 것이다.

한국을 찾는 전체 외국인 가운데 20% 수준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인 관광객은 국내 여행 산업과 주요 소매시장에 상당한 경제 효과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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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7월 한 달 동안 일본인 관광객이 27만4830명 한국을 다녀갔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19.2% 상승했다. 올해 1~7월 기준으로는 총 192만명 이상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153만여명과 비교해 25.5% 늘었다. 이 같은 흐름이 계속되면 올해 말까지 일본인 관광객은 300만명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K팝, K패션, K푸드 등 한류 콘텐츠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와 우리 문화에 관심을 두게 된 일본인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의 몰지각한 과거 인식과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경제 보복은 비난과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우호 성향으로 보이는 일본인 관광객을 문전박대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실망뿐이다.

이는 일본 내 혐한 세력에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음은 물론 길게는 일본인 관광객 감소와 국내 관련 산업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일본 외무성은 최근 네 차례에 걸쳐 한국 여행주의보를 발령했다.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 반일 시위 때문에 한국 내 일본 관련 시설 방문 시 충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골자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손님이 집을 찾으면 항상 가장 따뜻한 안방 아랫목으로 안내했다. 자신을 방문한 반가운 손님에 대한 예의다. 우리의 이 같은 배려는 일본인이 스스로 반한·혐한 감정을 떨쳐 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과거 일부 상인이 한국인 관광객을 거부하며 공분을 산 대마도(일본명 쓰시마)가 일본 불매운동이 장기화되자 사실상 지역 경제 재해 수준의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요식업 자영업자를 비롯한 우리 유통업계의 현명한 대처를 바란다. 감정 대응보다 이성 판단이 필요한 때다.


윤희석 유통 전문기자 pionee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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