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조치로 카드 후방산업인 밴사의 매출이 2분기 사상 최대 마이너스 실적을 기록했다. 당초 7000억원대 순손실이 예상되던 카드업계는 1%대 하락을 기록하며 선방했다. 카드사가 협력사인 밴사 대행 수수료를 대폭 삭감하며 손실 대부분을 밴사가 부담했기 때문이다.
반면 신용카드 발급 매수는 1억870만장으로 전년 동기 대비 6.3% 증가했다. 카드 결제 이용 건수와 결제 비중도 늘어났다.
밴사 대행 업무는 증가했지만 밴사가 카드사로부터 받는 승인중계, 매입, 수거 비용은 모두 줄어드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밴사 입장에서는 일은 늘어나고 수입은 줄었다.
이로 인해 중소형 밴사는 인수합병(M&A) 매물로 시장에 나오는 등 카드결제 후방산업의 연쇄 도산 우려가 발생했다.
9일 금융감독원이 2019년 상반기 신용카드사의 영업 실적을 발표했다. IFRS 회계 기준을 적용하면 당기순익은 전년 동기(8101억원) 대비 4.9% 감소한 7705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대손 준비금 적립 등을 제외한 실제 순익은 지난해 대비 1% 하락에 그쳤다.
특히 카드사의 상반기 가맹점 수수료 수익은 0.2%(134억원) 감소에 그쳤다. 지난해 말 정부의 수수료 인하 여파로 카드사가 조사한 7000억원 순손실 예측과도 한참 빗나갔다.
오히려 신용카드 이용액은 5.6% 늘었고,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발급 매수도 증가했다.
카드사 매출 지표는 당초 예상을 빗나가며 선방했지만 밴사 매출은 급감했다.
본지가 12개 밴사 매출을 분야별로 조사한 결과 상반기 밴 전체 매출은 540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920억원 대비 500억원 가까이 급감했다.
2분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분기 밴사 전체 매출은 2779억929만원이다. 지난해 2분기 2927억9144만원 대비 5.1% 하락했다. 승인중계와 매입, 수거 대행 수수료가 모두 감소했다.
결제 대행 건수는 증가했지만 수수료 수익은 감소하는 비상식적인 매출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특히 핵심 대행 업무인 승인중계와 매입 부문에서는 최대 7% 이상 매출이 빠졌다.
여기에 카드사가 밴 대행 수수료 추가 인하를 통보한 곳이 다수여서 밴사 매출은 올 하반기 역대 최악의 사태에 직면할 가능성이 짙어졌다.
카드사 매출 감소 요인을 밴사에 떠넘겼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밴업계는 카드사의 이 같은 상황에 집단 보이콧과 불공정 계약 관련 소송까지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미 12개 밴사는 롯데카드 대상으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제로페이 사업 등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소상공인 간편결제 제로페이 가맹 보급 사업을 밴사가 추진하고 있다. 매출 급감으로 수익이 거의 없는 제로페이 사업에서 손을 뗄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한 밴사 대표는 “회사 존폐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제로페이 보급 사업을 할 수 있는 여력이 거의 없다”면서 “변화에 따른 희생을 어느 일방이 감당하는 구조는 국내 결제 인프라 붕괴와 해외 인프라 종속이라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