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부품을 써야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납기를 제 시간에 맞출 수 있습니다. 생산 비용도 줄어들고요. 제품 고장 원인을 신속하게 파악해서 기술 개발 속도를 더욱 올릴 수 있습니다.”
경기 오산시 엘오티베큠 사옥에서 만난 김호식 엘오티베큠 사장은 제품 국산화를 하면 좋은 이유 세 가지를 꼽았다. 엘오티베큠은 반도체 장비 안에 들어가는 건식진공펌프를 95% 이상 국내 부품으로 만드는 회사다.
건식진공펌프는 반도체 장비 안에 있는 각종 물질과 기체를 빨아들여서 진공 상태로 만들어주는 펌프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요한 막을 웨이퍼에 오염 없이 고르게 씌우려면 이 펌프가 반드시 필요하다. 월 300㎜ 웨이퍼 투입 기준 14만~15만장을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공장에 6000대 안팎의 진공펌프가 설치될 정도다.
김호식 사장은 2014년 엘오티베큠에 사장으로 취임했다. 1989년부터 대기업, 장비 업체 등 반도체 현업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김 사장은 이곳에 취임하면서 국산화 작업에 착수했다. 그간 일본, 프랑스 등에서 베큠 속에 들어가는 인버터, 모터 등 핵심 부품들을 수입해왔다. 그러나 LS산전 등 국내 기업들과 접촉하면서 하나 둘씩 바꿔나갔다.
부품 국산화를 못할 이유도, 안할 이유도 없었다는 게 김 사장 생각이다. 그는 “외산 제품은 값이 비싼데다 운송비도 만만찮다”며 비용의 불리함을 꼽았다. 또 “게다가 그들과 소통하려면 며칠을 기다려야 하고, 만약 고장이 나면 원인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온전한 우리 기술을 개발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면서 “누군가는 우리 것을 만들고 써야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서 고쳐나가면 된다'는 철학으로 승부수를 걸었다.
5년 동안 엘오티베큠 직원들과 국산화에 공을 들인 끝에 회사는 제품의 95% 이상을 우리 부품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제품군도 다양해졌다. 김 사장이 취임할 당시 회사 베큠은 4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0종 이상을 개발했다.
반도체 호황 사이클을 타고 매출 성장도 일궜다. 2014년에는 약 890억원이었던 회사 매출이 2017년에는 2000억원을 넘겼다. 6%대였던 영업이익률은 2년 연속 10% 이상을 기록했다. 한 곳에 집중됐던 거래처를 다변화한 것도 이 시점부터였다. 현재 반도체용 중진공펌프 시장에서 점유율 20% 이상을 차지할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그는 국산화 이후 느꼈던 흥미로운 사례도 소개했다. 김 사장은 “국산 제품과 외산 제품을 함께 쓴 제품을 고객사에게 납품한 적이 있었는데, 문제가 발생하니 외산 부품 회사에서는 돈을 요구하고 국내 회사는 바로 달려와 문제를 함께 해결했다”며 “국산화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국산 부품사들과 협력해 펌프 사업 영역을 점차 늘려나가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호식 사장은 “업계에서 주로 쓰이는 중진공펌프 뿐 아니라 고진공펌프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려고 연구 중”이라면서 “플라즈마 제품을 응용해 안전한 작업장을 만드는 제품도 개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산화 이슈에 대한 정책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반도체 제조회사들이 국산 부품을 써보고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국내 업계도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 업계 연구자들이 꾸준히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근무 환경 개선 등에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