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1시에 연구실에서 만나 논문 마무리할까요?” K 교수의 '주말 갑질'(?)에 은근히 부아가 났지만 어쩔 수없이 주말을 포기해야 하던 박사과정 학생이 지금은 명문 대학 교수가 돼 있다. “토요일에 봅시다.” K 교수의 주말 갑질을 답습한 그는 요즈음 가슴이 먹먹하다. K 교수가 많지 않은 나이에 타계했기 때문이다. 자신보다는 학문과 제자들을 위해 자신의 주말을 포기한 그를 원망한 시간들이 후회된다. 무엇보다 학생 앞에 서려면 “교수는 권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존경받는 학자였음에 틀림없다.
교수의 권위는 학문의 우수성과 생활의 모범까지도 갖춰야 생긴다. 권위 없는 교수는 강의는 할 수 있어도 좋은 교육은 할 수 없다. 교수의 직함을 이용해 다른 일에 열중하거나 월급봉투에 만족하는 이상은 불가능하다. 권위를 상실하면 교단을 떠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K 교수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권위가 있어도 자신의 생활이 말에 미치지 못해 부끄러울 때 가장 힘들다. 훌륭한 교수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교수에게는 신뢰를 근거로 맡겨진 무한 책임과 권한이 있다. 학생 선발과 성적 관리다. 강의 내용과 방식을 결정하는 것도 교수의 몫이다. 온라인 강의와 4차 산업혁명이 교육을 획일화시킨다고 하지만 교수의 투명성에 기반을 둔 교육제도는 여전히 존재한다. 또 연구 결과 공유는 기본 의무인 동시에 중요한 업적이다. 성공한 제자와 우수한 논문 공유가 교수에게 가장 큰 보람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서 논문에 개입하는 불순한 의도와 행위는 강력하게 제재했다. H 교수의 실험 결과 조작이 사회 문제로 거론되고 논문 표절과 저자 바꿔치기 등이 금기인 이유가 교권 사수를 위한 노력이다.
교수의 권위는 법과 제도가 정하지 않는다. '청출어람'을 위해 사회 스스로가 훌륭한 인재 양성을 위해 교수에게 부여한 특별한 장치다. 그러나 교권이 일부 실수와 오류로 무너지고 있어 안타깝다. 주어진 권한을 사리사욕 쟁취에 사용한 결과다. 물론 누구나 자신과 가족의 부와 성공을 지향하거나 이득을 취하기 위한 욕심은 있다. 교수의 권위와 욕심 사이를 저울질해서 한쪽을 택하면 누구도 나무라지 않는다. 두 가지를 모두 쟁취하려는 과욕을 탓하는 것이다. 이득 포기가 어려우면 교단을 떠나야 한다. 교수로서 자율 규제의 굴레를 쓰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연구 윤리가 거론되는 지금 사태를 보면 언론 보도, 정부 전수조사, 대책 발표로 마무리 짓는 해결 방식이 재현될 것 같아 갑갑하다. 지나가는 비를 피하는 방식보다 문제의 근원을 처치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교수의 권위를 상실하지 않고 부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자율 규제를 강화하고,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많은 교수는 머무르지 못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일부 교수의 몰지각한 처사가 사회 문제가 돼 권위를 상실하면 득보다 실이 많다. 이기는 게임보다 잘하는 게임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언행일치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교육자로 있는 한 '생각·말·행동 한 줄로 세우기'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진실과 무관하지만 사회를 실망시켰다는 구설수에 오르면 교수의 권위는 급격하게 약화된다. 나의 권위가 기대치 이하라고 생각되는 순간 과감히 교단을 떠나야 한다. 교수는 내가 아는 것을 가르치는 것만으로 학생 성공을 일굴 수 없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