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은 무서운 속도로 인류의 생산능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단순히 기술 발전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에 걸쳐 인류사회 모든 분야에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과학자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과거에는 내부 기술, 아이디어, 데이터 등이 외부에 노출되면 심각한 보안문제와 함께 경쟁에서 패배한다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와 모바일 기반 가치창출이 가능해진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공개된 기술과 아이디어가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오히려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한 예로 세계 개발자에게 공개된 구글의 크롬 웹 브라우저는 보다 우수한 성능과 안정성을 갖췄다. 크롬은 비공개 MS 익스플로러에 비해 세계 시장점유율에서 앞서고 있다. 전기자동차기업 테슬라도 2014년 보유하고 있던 핵심 특허 모두를 외부에 공개하기도 했다. 사용자가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수정·변경할 수 있도록 한 레고의 오픈 정책은 제품 경쟁력을 보다 견고히 했을 뿐만 아니라 로봇 교육산업 진출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열기도 했다.
과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데이터 개방과 공유를 통해 융·복합 연구 성과를 효율적으로 이루고, 보다 큰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오픈 사이언스' 운동이 활발하다. 여러 분야 과학자가 서로 정보를 공개해 협력 연구를 하고, 관련 성과를 실시간으로 일반 대중과 공유하는 것은 현대 과학이 당면한 한계와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케임브리지대 수학과에서 수학적 난제를 온라인상에 공유해 단기간에 핵심 문제를 해결한 '폴리매스' 프로젝트는 오픈 사이언스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보다 큰 규모 오픈 사이언스 움직임도 활발하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인간게놈지도를 조기에 완성해 사회·경제적으로 인류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고,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 산하 36개국이 참여하는 거대 강입자가속기(LHC) 프로젝트는 2012년 힉스입자를 발견하는 등 과학사에 매우 중요한 연구 성과를 많이 보고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멀리 있지 않다. 나 또한 오픈 사이언스 흐름 속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다양한 공개 소프트웨어를 통해 다른 연구자와 시공간 제약 없이 소통하고, 그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컴퓨터 사이언스 영역으로 연구 범위를 넓혀나가면서 효율성 면에서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어쩌면 머지않은 시일에 현재 전공 분야인 복합소재를 AI와 협업할 수도 있겠다는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시대 흐름에 따라 과학문화는 자연스레 변해왔다. 우리는 현재 새로운 흐름인 오픈 사이언스 시대를 살고 있다. 누군가가 해내지 못했던 것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성과를 창출하는 것이 과거 과학자의 역할이었다면, 지식과 기술의 공유를 통해 한 차원 높은 혁신을 이끌어내는 것이 현재 과학자의 임무가 아닐까 싶다. 대한민국의 과학자들이 '오픈 사이언스'라는 넓은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는 고래가 돼 혁신에 앞장서고 새로운 과학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전대영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기능성복합소재연구센터 선임연구원 dyjeon@kist.re.kr
-
최호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