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준의 어퍼컷]일본 경제보복 대응 '삼원칙'

Photo Image

일본이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를 선언한 지 2주가 흘렀다. 지난달 말 일본 언론에서 규제안 보도가 흘러나왔고 이달 1일 경제산업성이 수출 통제 조치를 전격 발표했다. 이 후 대한민국은 벌집을 쑤신 듯 난리가 따로 없었다. 일제히 경제보복이라며 연일 일본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 청와대 정책실장, 장관이 직접 머리를 맞대고 대기업 총수를 만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여론도 들끓었다. 반일감정이 일어나며 불매운동까지 이어졌다. 격앙된 정부 반응과 반일 여론만 보자면 당장 전쟁이라도 불사할 분위기였다. 오히려 당사자인 기업이 머쓱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났다. 바뀐 게 있을까. 온갖 주장과 논평이 난무했지만 상황은 그대로다. 아직도 속 시원한 이유조차 파악을 못했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포함한 대일 '불통' 외교에 따른 불만인지, 북한을 겨냥한 안보 이슈인지, 국내 반도체 산업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인지 오리무중이다. 일본 아베 총리가 밝힌 “신뢰관계가 무너졌다”는 배경이 전부다. 가장 큰 이혼 부부 사유가 “성격 차이 때문”이라는 핑계처럼 들으나마나한 얘기일 뿐이다.

정확한 일본 의중을 모르니 대책도 우왕좌왕이다. 감정이 앞선 즉자 대응 아니면 “다 같이 열심히 잘 해보자”는 식이다. 밥 먹으면 배부르다는 당연하면서 원론적인 이야기뿐이다. 반면에 일본은 시간이 흐를수록 차근차근 공격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칼끝은 더 예리해졌고 정확하게 아픈 곳을 겨누고 있다. 수개월 전부터 시나리오를 거쳐 우리를 공격했다는 소문이 빈 말로 들리지 않는다.

사실 해법은 쉽지 않다. 오죽하면 김상조 정책실장이 언급한데로 경제보복에 나서기 훨씬 전부터 우리에게 취약한 '100개 롱 리스트'를 파악했지만 여태 구체적인 대책을 찾지 못했을까 싶다. 그만큼 어려운 문제다. 그래도 원칙은 세워야 한다. 집중할 곳에 집중하고 포기할 곳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한정된 자원으로 모든 걸 다할 수 없다. 명쾌한 해법은 아니더라도 문제를 풀어가는 절차와 기준은 가져야 한다.

첫째 원칙은 '선정후경(先政後經)'이다. 정치가 먼저고 경제는 나중이다. 표면적으로 경제 보복이지만 정치적인 목적이 깔려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 정부가 책임진다는 각오로 백방으로 뛰어야 한다. 기업을 앞세우는 건 무책임한 처사다. 기업은 뒤로 빠져서 차분히 대응책을 준비하는 게 옳다.

둘째는 '선이후난(先易後難)'이다. 쉬운 것부터 먼저하고 어려운 것은 나중에 한다는 대원칙이 중요하다. 수입처 다변화, 국내생산 확대, 원천기술 도입, 핵심소재 국산화 등 여러 대책이 나오지만 모두 시간이 필요하다. 가장 빠른 해결책은 외교로 푸는 방법이다. 외교라인이 제 역할을 못했기에 사단이 벌어졌다. 무너진 외교라인을 바로 세워야 한다. 필요하면 장관 교체도 고민해 봐야 한다. 국가간 갈등에서 가장 빠른 방법은 역시 강한 외교를 통한 협상력이다.

마지막으로 '선준후공(先準後擊)'이다. 대비하고 공격해야 한다. 일본 경제보복으로 우리 산업의 아킬레스건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체질 개선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확실한 비교우위 품목을 늘려야 한다. 산업 경쟁력도 점검하고 뒤돌아보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일본과 갈등은 한쪽이 완전히 백기를 들어야 끝나는 싸움이 아니다. 힘과 혈기를 앞세운 주먹다짐과 다르다. 협상을 통한 철저한 실리게임이다. 게임의 원칙은 간단하다.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아야 한다. 손에 쥔 패가 부실하면서 언성만 높이면 '뻥카'일 뿐이다.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