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7·8월) 전기요금을 월 1만원씩 감면해주는 '누진제 개편안'이 한국전력공사 이사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보류됐다. 한전은 매년 3000억원에 가까운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판단, 소액 주주들의 강한 반발을 의식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한전은 21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이사회를 열고, 전기요금 누진제 태스크포스(TF)가 권고한 최종안(개편 1안)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김태유 한전 이사회 의장은 “이사회 결과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은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보류하고 조만간 다시 만나 논의하기로 했다”면서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논의할 것이고, 오늘 이사회 회의 분위기는 아주 진지했다”고 밝혔다.
민관합동 전기요금 누진제 TF가 한전에 제안한 권고안은 올해부터 매년 7·8월 전기요금 누진 구간을 확대해 1629만 가구 전기요금을 월 평균 1만142원 가량 낮추는 방안이다. 이로 인해 한전이 떠안아야 할 부담액은 연간 3000억 수준이다. 정부는 누진제 개편에 따른 한전 재무적 부담 일부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국회에 발목을 잡힐 가능성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전은 지난해에도 7·8월 전기요금을 깎아주면서 3587억 손실을 봤고, 정부가 예산에 한전 손실액 보전을 반영했지만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 전액 삭감한 바 있다. 결국 정부가 예비비로 353억원만 보전해줬다.
앞서 한전 소액주주들은 11일 누진제 공청회에서 “한전이 누진제 개편안을 수용하면 경영진을 배임 혐의로 고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전이 정부 안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보류한 것은 '경영진 배임 혐의'를 둘러싼 법정공방을 의식, 추후 가결을 하더라도 이사회에서 주주 입장을 최대한 고려했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실제 이날 이사회에서는 한전 측이 로펌을 통해 경영진 배임 혐의에 대한 검토 결과를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한전 이사회가 누진제 개편안을 그대로 통과시킬 경우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사회에 참석한 한전 고위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이사회에서 로펌을 통해 확인한 경영진 배임 가능성에 대한 법률 검토 결과를 공유했다”면서 “배임 여부 등 여러가지 가능성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국회 관계자는 “정부가 한전 부담을 일부 덜어주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류한 것은 이사회에서 구체적인 방안 없이 무조건 정부를 믿고 따라가기엔 부담스러웠던 거 같다”고 설명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