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36년 허송세월'… 핵폐기물 시한폭탄 2년 '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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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한울 원자력발전본부 내 임시저장시설(수조) /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정부가 고준위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수립에 본격 착수했다. 각계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국민 의견수렴 결과를 제시하면 이를 기반으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수립, 행정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그러나 2021년이면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 시간이 촉박하다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핵폐기물 관리시설 부지선정에 따른 주민수용성 및 환경단체와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지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배경은

사용후핵연료는 발전소 원자로 속에서 핵분열 반응 중 생긴 생성물이다. 이로 인해 높은 방사능을 품고 있어 반드시 차폐구조물 밖에서 안전하게 보관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원자력 설비용량 기준 상위 15개국 중 원전 격납건물 수조 이외에 별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없는 유일한 원전 운영국이다. 2021년이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수조) 포화가 시작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저장시설을 언제·어디에·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국가 정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하는 처지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수립 3대 쟁점은 △전 정부에서 마련한 기본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할지 △저장시설 부지확보에 대한 주민수용성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지 △탈(脫)원전 정책에 관리방안 결과를 반영할지 등으로 구분된다.

◇시간이 '金'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포화율은 1분기 기준 90.7%로, 2021년 포화가 예상된다. 한빛원전(2026년), 고리원전(2027년), 한울원전(2028년) 등도 예상 포화시기가 10년이 채 남지 않았다.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곳이 없으면 원전 가동도 중단해야 한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정부는 1983년부터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 부지확보를 시도했지만 9차례나 무산된 바 있다. 1990년 안면도, 1994년 굴업도, 2004년 부안에 부지를 확보하려다 주민수용성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한 것이 대표적이다. 1998년 9월 원자력위원회는 2016년까지 원전 외부에 중간 저장시설을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는 2016년 5월 기본계획을 만들어 행정 예고했지만 결국 또 실행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36년 동안 허송세월만 보낸 것이다.

전문가는 시간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점을 고려, 전 정부에서 마련한 기본계획에서 문제점을 찾고 보완하는 형태로 재검토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A부터 Z까지 원점에서 재검토 할 경우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 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리정책을 수립한 이후 저장시설을 구축하는 기간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전 정부에서 마련한 사용후핵연료 기본계획은 사회적 합의가 덜 됐다는 이유로 재검토가 추진되는 것인데, 중요 기술조사와 절차는 충분히 갖춰졌다”며 “이번 재검토에서 획기적인 방안이 나오면 다행이지만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이전 정부에서 제시한 기본계획을 토대로 문제점을 찾고 보완하는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재검토위원회 운영기간은 기본 1년이지만 국민 의견수렴 및 논의가 조기에 마무리되면 위원회 활동을 종료하고 관리정책 수립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재검토 범위는 정부가 아닌 위원회에서 공정한 논의를 거쳐 결정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주민수용성 등 과제 산적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 부지선정 이후 주민수용성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지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정부는 2005년 주민투표 방식을 적용해 중저준위시설을 경주에 확보한 바 있다. 다만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지역주민 기피 정도가 월등히 크다. 때문에 수용성 문제를 극복할 '회심의 조커'가 필요하다. 부지를 선정한 이후 '습식', '건식' 등 관리방식을 선정하는 것도 넘어야 할 산이다. 습식은 별도 수조에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고 건식은 연료를 방사선차폐특수용기(캐스크)에 넣어 지상저장 구조물에 저장하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이 밖에 장기적 관점에서 사용후핵연료를 영구 처분하는 기술개발 여부도 결정돼야 할 사안이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 따르면 사용후핵연료는 10만년 이상 생태계와 완전히 격리, 안전하게 처리해야 할 대상이다. 핵폐기물을 영구 처리하는 방안을 마련해 후대에 부담을 주지 않는 근본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분석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사용후핵연료 정책 방향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며 “저장시설 확보에 먼저 집중할 것인지 핵심 기술개발을 병행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공존한다”고 전했다.

◇'에너지정책' 향방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이 수립된 이후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에 이를 반영할 지도 관심사다. 사회적 합의과정을 거쳐 에너지정책에 반영돼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원전은 발전단가가 다른 에너지원보다 저렴하고 전기생산 안정성 측면에서 장점이 뚜렷하다는 점을 고려, 사용후핵연료 관리대책이 나오면 탈원전 정책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가 '탈원전 정책'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대한 근본 대책이 마련된다면 이전 정부에서 풀지 못한 숙제를 해결하는 성과”라면서도 “이는 탈원전 정책 변화에 일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 이경민 산업정책(세종)전문 기자 km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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