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10년째 멈춰 선 교육IT<상>100Mbps에 갇힌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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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국가 초고속인터넷망 사업으로 세계에서 가장 앞서 나갔던 우리나라 교육 IT 인프라가 1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2009년 IPTV 활용 교육을 위한 초·중·고 인터넷망 고도화 사업이 추진된 것이 전국 단위 학교 IT 환경 개선의 사실상 마지막 사업이다. 그때에도 추가 장비 설치로 최대 10Mbps 수준이던 학교망 속도가 50Mbps까지 향상되는 데 그쳤다. 이후 시도교육청이 개별적으로 업그레이드를 추진했으나 대다수는 100Mbps 수준이다.

그로부터 10년. 우리 사회는 4세대(G) LTE를 넘어 5G 시대로 접어들었으나 학교 인터넷망만큼은 여전히 100Mbps 속도에 머물고 있다. 20년 전 인터넷 붐이 일었을 때 수준의 속도다. 수업시간에 클립 영상 하나를 다운로드하는 것조차 버겁다.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같은 실감형 교육 콘텐츠가 나와도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일 뿐이다. 학교 담장 밖과 담장 안의 정보 활용 속도 차이가 수십 배 난다. 학내망 상황은 4차 산업혁명 시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우리 교육 정보화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학생들은 서책보다 디지털에 친숙한 세대로 전환됐으나 교육 환경은 답보 상태다. 미래교육을 담을 틀이 없으면 미래교육을 위한 담론도 무용지물이다. 국내 교육 IT 환경 문제점과 해결책은 무엇인지 2회에 걸쳐 점검한다.

27일 교육부와 관계기관에 따르면 국내 전국 초·중등학교 70~80%의 학내망 속도가 100Mbps에 불과하다. 100Mbps 속도가 한계인 장비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관리 부재다. 통신망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돼 그마저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곳이 허다하다. 망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보안까지 엉망이다.

◇'누더기'가 된 학내망

학내망 개선을 위해 학교를 방문한 한 IT기업은 스위치와 케이블 관리 상황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한마디로 '누더기'라고 표현할 상황이었다. 추가 설치된 스위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직렬 형태로 연결되어 있었다. 케이블은 여기저기 어지럽게 꽂혀있고 제대로 된 공사 도면조차 찾을 수 없었다. 어느 한 장비에서 장애가 발생하면 전체 망에 문제가 생기는 구조였다. 기가급 속도를 낼 수 있는 스위치를 구축해 놓고도 중간중간 100Mbps 속도 L2스위치를 배치했다. 한마디로 총체적 부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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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망 구성. 자료=교육부

교사 업무망과 학생이 접속하는 교육망은 엄격하게 분리돼야 하지만 장비가 얽혀 보안의 기본원칙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학내망은 교육망(무선포함)·업무망·기타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육망은 SW교육과 디지털교과서, e러닝콘텐츠를 활용할 때 접속하는 망이다. 업무망은 학생 성적 등을 다루는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듀파인(국가회계정보시스템) 등을 접속할 때만 사용하도록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다. 인터넷 전화 등은 기타망을 활용한다.

업무망이 교육청에서부터 학교까지 별도로 분리돼 있지만 케이블과 장비를 섞어버리면 물리적 분리는 의미가 없다. 관리 부실과 무작위적인 확장공사로 인해 가장 아래 단의 학교 보안시스템부터 엉망이 됐다.

학내망 투자가 시도교육청 자체 사업과 정부의 디지털교과서 보급 사업 등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이뤄졌지만 체계적인 투자와 보급이 이뤄지지 않았다.

핵심장비를 업그레이드하지 않고 그 위에 추가하는 형태로 망을 확장하다보니 오래된 장비일수록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10년 전 인터넷망 고도화사업을 통해 지원받은 장비가 백본역할을 하는 곳도 있다.

◇실감형 콘텐츠 내놓아도 망 개선 없이는 무용지물

학내망은 소프트웨어(SW) 교육과 디지털교과서 활용을 위해 기본 중 기본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교육부도 디지털교과서 활용 확대를 위해 태블릿PC와 무선액세스포인트(AP) 보급 사업을 함께 펼치고 있다.

교육부는 2021년까지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7967개교에 AP 1만9500여대와 태블릿PC 38만 5600여대를 보급할 계획이다. 디지털교과서를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실감형 콘텐츠 50종도 지난해 개발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맞춘 사회·과학·영어 (초3~4, 중1) 디지털교과서 81종을 만들었고, 내년까지 초5~6년과 중 2~3년 교과서도 출판한다.

이 같은 노력은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좋은 콘텐츠를 개발하고 무선 AP를 확대해도 기본망 자체가 부실하면 활용도가 떨어지는 탓이다. 과거에도 농산어촌 학교를 중심으로 미래 교육을 위해 태블릿PC를 보급한 바 있으나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

충청도 소재 한 중학교 교장은 “몇 년 전에 받은 태블릿PC를 사실 잘 쓰지도 않는다”며 “차라리 학생들에게 나눠주려고 해도 학교가 자재관리를 해야 한다고 해서 창고에서 썩히고 있다”고 말했다.

관리자와 체계적인 관리 지침이 없어서 나타난 문제다.

국내 한 교육청이 관내 학교의 교육정보 업무 담당 교사를 조사한 결과 학교당 평균 2.2명으로 나타났으나 전공교사는 0.6명에 그쳤다. 네트워크를 전혀 모르는 교사가 담당을 맡아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정보 담당 교사 문제만은 아니다. 이를 관리할 교육청 담당자도 중구난방이다. 시도교육청 학내망 담당이 소속된 과는 미래인재교육과, 융합인재과 등이다. 광주교육청은 체육예술융합교육과 소속이다. 교육정보화담당관이 분리된 곳은 서울과 경기, 인천 교육청 정도다.

업무망과 학내망 무선 AP 관리도 제각각이다. 학내망 구축과 관리는 시·도 교육청 소속 업무다. AP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경기도 판교에 있는 중앙 지원센터로 연락해야 한다.

◇IT 배척에 공론화조차 안돼

IT는 참여형 미래 교육을 위한 핵심 인프라임에도 한동안 소홀히 다뤄졌다. 학생이 수업시간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게임을 할 것이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학교 인터넷 인프라 개선이 시급했지만 그대로 둔 채 디지털교과서 같은 교육용 자재만 개발한 것이다.

IT 발전과 함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기술도 등장했지만 대안을 논의할 장조차 없었다. 교육부는 학교와 교육청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명목 아래 뒷짐만 졌다. 학교IT 환경 개선을 위해 전문가가 나서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한 공론화가 시급하다.

에듀테크기업 유비온 임재환 대표는 “어떤 모델을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가 미흡하다”면서 “문제점을 공개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면 좋은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대표는 “미래 학교 모델을 만들어 새로 짓는 학교에 우선 적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표> 학내망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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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보경 정책 전문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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