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게임장애' 등재를 건강문제에 대한 예방과 치료를 촉진하는 시도로 정의한다. 질병코드 등재는 게임자체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 산업적 가치를 폄훼하는 것이 아니며 일반적인 게임 사용을 중독으로 규정하자는 의도도 아니라고 설명한다.
또 게임장애 발생 요인으로는 사행, 선정 요소를 전략과 성취 요소보다 높게 만든 데 따른 것이라고 해석했다. 중독성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게임산업의 비윤리 이윤추구가 더 큰 어려움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알코올사용장애 진단자체가 주류산업 이익구조나 알코올 자체를 배격하기 위해 만들어 지지 않았다”며 “게임 자체에 대해 좋다, 나쁘다 등 가치 판단을 부여하기보다 게임을 병적으로 사용하는 상태를 일컫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질병코드 등재는 게임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생긴 심각한 건강문제를 돕는 건강체계와 전문가의 책임 있는 반응”이라고 강조했다.
중독문제는 대개 매개체, 개인 환경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한다. 술을 마시는 모든 사람이 알코올중독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도박을 하는 모든 사람이 도박 중독에 빠지지 않듯 게임을 하는 사람 중 일부가 중독적 사용상태가 된다.
그는 심리적, 기질적으로 취약한 개인이 중독적 특성이 강화된 게임콘텐츠를 접하면 다른 대안적 즐길거리가 없는 환경에서 게임장애가 발생한다고 봤다. 비기능적 사용으로 인한 문제로부터 게임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매개체, 개인, 환경적 측면 위험요인을 줄이고 보호요인을 늘리는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감각적·보상적 요소를 강화하는 게임업계 비즈니스모델을 중독성 원인으로 분석했다. 그래서 게임업계가 중독성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데 집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임 중독 사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건강문제 비용과 책임을 업계가 부담해야 할 것을 우려해서다.
그는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이 걱정할 문제는 게임장애 공중보건학적 대응이 아니라 게임산업의 비윤리적 이윤 추구 행태”라며 “확률형 아이템 등 이윤추구를 위해 무분별하게 사행성을 활용한 결과 집단소송 등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게임산업계 지원을 받는 학계와 언론을 동원해 과학적 근거가 취약하다는 비판이나 전문가 집단 피해 구제 노력을 집단이기주의로 호도하고 있다”며 “이들도 과도한 게임사용으로 인한 중독문제를 예방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윤리적 대응에 동참해 게임산업 발전 지속성을 저해하지 않고 성숙한 문화 토대를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확률형아이템, 선정성 규제, 게임사용에 대한 모니터링정보제공이 필요하다고 봤다. 게임장애 집단에 대한 조기치료서비스 제공, 근거기반 예방 및 치료서비스 제공, 환경적 측면에서 다양한 대안적 문화, 예술, 놀이 자원 제공과 셧다운, 피로도, 쿨링오프, 가디언 제도 역시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
이 교수는 게임 과사용과 관련한 건강문제에 대해 공중보건학적 대응이 가지는 정당성을 설파했다.
게임장애는 아시아국가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높은 인구밀도에 기인한 경쟁으로 스트레스가 높고 여가문화 인프라가 적은 상황에서 IT인프라 빠른 구축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는 2014년 동경에서 중독과 정신건강 전문가 30명을 모아 '디지털기기 과다사용에 의한 건강문제에 대한 공중보건학적 대응을 위한 국제 전문가 TF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 결과 디지털 콘텐츠 과도한 사용으로 발생하는 정신행동문제가 심각하고 규모가 큰 건강문제로 판단했다. ICD-11에 진단기준을 게시해 현장적용연구를 시행하기로 했다.
정신행동건강영역에서 중독은 '특정 물질이나 행위에 과도하게 집착해 조절력을 상실해 일상생활 기능수행에 유의미하고 심각한 손상이 발생한 상태'로 정의한다. 단순 습관에서 벗어나 어떤 물질 혹은 대상을 얻고자 하는 행동 양과 횟수가 많아지고 얻지 못하면 신체, 심리 불편함을 초래하는 의존적 상태다. 중독질환은 물질사용장애와 행위중독질환을 포함하는 포괄적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교수는 “1951년 캐나다 뇌과학자인 올즈와 밀러가 뇌에 자극을 주면 쾌감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는 보상회로를 발견한 이후 보상회로를 자극하는 특정 행위나 물질 사용이 중독장애로 이어줄 수 있음이 밝혀졌다”며 “2000년대 이후 도박, 인터넷게임 등도 알코올과 같은 물질과 마찬가지로 모두 보상회로를 자극해 도파민을 분비시키면서 중독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알코올, 도박, 게임 등은 적절한 범위 내에서 사용하지 않으면 뇌 보상회로가 중독적 자극에 대해서만 강하게 활성화되고 자기조절력을 상실한다. 개인은 물론 사회적 또는 법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특정 비적응적 정신행동문제가 질병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질병의 뇌과학적 기전' '질병고유의 자연사적 경로' '정신행동문제로 인한 공중보건학적 폐해' 3가지 측면에서 근거가 필요하다. 이 교수는 이미 세 가지 측면이 모두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게임중독에 대한 장기추적연구가 수행됐으며 진단기준을 활용한 역학연구와 뇌영상 연구 그리고 코호트종단추적연구가 진행됐다. 이 연구를 통해 다양한 기능 손상이 발생하며 병적 상태가 일정하게 발생, 유지된다는 것이 보고됐다. 청소년의 경우 게임중독 1년 지속률을 독일 30%, 대만 50%, 네덜란드 50%로 나타났다. 2년 지속률은 노르웨이 35%, 싱가포르 84%로 조사됐다.
중독장애를 일으키는 물질이나 행위는 두 가지 특징을 공통적으로 가진다. 첫 번째 단기적으로 도파민 회로에 작용해서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둘째 장기간 반복할 경우 도파민 회로에서 신경적응 변화가 일어난다. 게임장애가 핵심기전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뇌파 및 양전자방출단층촬영/단일광자방출전산화단층촬영(PET/SPECT) 뇌영상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과도한 게임이용으로 충동조절, 감정조절 기능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지속 보고되고 있다. 근골격계 이상과 안건강이상, 불면증, 영향 불균형 사고 위험이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
이 교수는 “결론적으로 과도한 게임은 뇌에 작용해 중독적 사용을 유발할 수 있고 단순한 습관이 아닌 조절 기능을 저하시켜 중독 지속을 초래할 수 있어 다양한 건강문제가 발생한다”며 “이는 질병 개념 형성에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한다”고 말했다.
게임장애 진단기준이 신뢰성과 타당성이 없다는 주장도 반박했다. 물질중독과 행위중독 진단기준 중 공통적이고 핵심적인 증상을 선별했으며 중독 개념이 의존에서 사용장애로 바뀌었기 때문에 금단과 내성이 필수적 진단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이 교수는 “가장 심각한 경우를 질병상태로 규정함으로서 관련 연구와 자료수집을 촉진하고 예방과 치료서비스 제공하는 것이 공중보건에 이익이 클 것”이라며 “하루빨리 문제발생시 도울 수 있는 안정장치가 마련돼 안전하고 건전하게 디지털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