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IT 분야에 국제전자제품 박람회(CES)로 비유되는 '2019 북미의료정보관리시스템학회(HIMSS 2019)'가 막을 내렸다. 올해 행사에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IBM 등으로 대변하는 글로벌 IT기업 강세가 두드러졌다. 대형 부스를 마련해 자사 IT 인프라로 헬스케어 스타트업과 협업사례를 소개하고, 미래 파트너를 모집하는데 집중했다. IT기업이 주도하는 의료IT '생태계' 경쟁이 불붙는다.
우리나라 기업도 HIMSS 2019에 참가,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지케어텍-분당서울대병원은 사상 최대 규모 부스를 마련해 국산 병원정보시스템(HIS) 영업에 올인했다. 혈관인식, 의료진 단말기, 보안 솔루션 등 다섯 개 기업도 참가, 역대 가장 최대 규모였다. 동시에 한계도 확인했다. 세계 의료IT 시장은 병원-기업-환자가 한데 모여 생태계를 조성해 성장한다. 우리나라는 단절된 채 좀처럼 융합하지 못한다. HIMSS 2019 주요 트렌드와 우리나라 의료IT 발전방안을 전문가와 논의했다.
▲참석자(가나다순)
△김종재 아산생명과학연구원장
△백롱민 분당서울대병원 연구부원장
△황희 이지케어텍 부사장
△이흥로 바임컨설팅그룹 전무
※사회=정용철 전자신문 SW융합산업부 기자
◇사회(정용철 전자신문 SW융합산업부 기자)=의료IT업계 CES로 일컫는 HIMSS가 올해도 500개가 넘는 기업과 5만 여명에 달하는 참관객이 모여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올해 HIMSS 화두는 무엇이라고 보나.
◇김종재(아산생명과학연구원장)=구글이나 IBM, MS 같은 글로벌 IT 공룡이 단연 눈에 띈다. 이들을 주축으로 그동안 축적했던 다양한 의료 데이터를 분석한 실제 사례가 이번에 공유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데이터를 모으는데 집중했다면 수집한 데이터를 어떻게 사용했고, 어떤 효과가 있는지 실체를 제시하면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기업과 협업해야 효과를 거둘지 선택에 기로에 선다.
◇백롱민(분당서울대병원 연구부원장)=비슷한 생각이다. 그동안 데이터를 어떻게 모을지에 초점을 맞추고, 표준화나 수집 도구가 많이 소개됐다. 이제 수집을 떠나 활용에 관심이 모아진다. 올해 HIMSS에서는 데이터를 어떻게 쓸지 방향을 조금씩 제시했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데이터에 있어 기술 진보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황희(이지케어텍 부사장)=최근 의료계 최고 화두인 인공지능(AI)은 HIMSS에서도 주요 관심사다. 하지만 작년과 비교해 AI기업 부스는 많이 줄었다. AI 핵심은 데이터다. 최근 많은 스타트업과 병원이 일부 전자의무기록(EMR) 데이터를 활용해 AI를 연구한다. 시장에 나가려고 데이터 규모를 늘려 테스트를 하면 상당수가 실패한다. 일부 병원에서 정제된 데이터만 사용했기 때문에 다른 병원 데이터를 넣으면 결과가 안 좋을 수밖에 없다. 올해 HIMSS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EMR 정합성이 화두였다.
◇이흥로(바임컨설팅그룹 전무)=AI를 둘러싼 시차를 확인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HIMSS 전시장 곳곳에는 AI 이야기를 안 하는 기업이 없을 정도로 화두였다. 하지만 상용 AI 솔루션은 확인하지 못했다. 연구실에서 후향적으로 연구는 많이 하지만, 현장에 오기까지는 고민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의료기관과 협업해 검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매해 전시규모가 확대되는 HIMSS만 보더라도 의료IT 수요는 높아진다. 의료 분야에 빅데이터, 클라우드, AI 등 IT 접목이 절실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백롱민=환자를 둘러싼 정보로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하고 싶은 욕구가 높다. 환자 정보를 더 많이 수집하고 분석하기 위해서는 EMR이나 스마트기기 등이 필요하다. 정밀의료가 부각되면서 임상, 유전체, 라이프로그 데이터 분석이 중요하다. 단순히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넘어 다른 기관이나 사람이 가진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구현할 열쇠가 바로 IT다.
◇이흥로=의료 서비스 질을 높이는 것과 운영 효율성을 높이는 것 두 가지가 주요 배경이다. 운영 효율성에 한해 말하자면 병원 경영에 IT는 핵심이다. 가령 과거 수술실 일정은 병원 정책에 의해 결정됐다. 이제 EMR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예측 가능한 선에서 최적 일정을 짠다. 병원 운영에 데이터를 기반으로 효율성이 높아진다. 우리나라도 고도화된 EMR을 구축하면 의료 질 개선은 물론 병원 운영 효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김종재=IT는 사람이 가진 오차를 줄인다. AI를 예로 들어보자. 현재 병원에서 가장 활발하게 AI를 접목하는 곳이 영상의학과다. 엑스레이나 MRI(자기공명영상) 등 영상정보를 의사가 판독하던 것에서 기계가 옆에서 도와주니 정확도가 훨씬 높아진다. 의료 프로세스도 마찬가지다. EMR 기능이 고도화되면서 예전에 처방이나 진단을 잘못해서 발생한 사고를 시스템이 자동으로 경고, 수정한다. 사람 생명이 오가는 의료기관에 실수나 오차를 줄여보자는 점에서 IT 수요가 높은 것 같다.
◇황희=의료IT 수요는 정확도와 효율성 추구가 목적이다. 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70세 이상 노인 의료비는 갈수록 늘어난다. 이중에 10%만 줄여도 사회적 비용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논문이 계속 나온다. 서울아산병원을 중심으로 한 AI 프로젝트 '닥터앤서'도 진행 중이지만, 이 결과물은 대형병원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지방 중소도시와 같이 전문 의료진이 부족한 곳에 AI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목적이다.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는 게 국가 의료비 절감에 필수요건이라면, 빠르게 병을 알아채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것이 지금 이야기하는 AI 목적이자 의료IT 수요다.
◇사회=과거 HIMSS가 EMR, OCS 같은 전통 의료IT기업 독무대였다면, 이제는 구글이나 MS 같은 글로벌 IT 공룡이 주인공에 가깝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의료에 바탕을 두지 않기 때문에 전문기업과 손잡고 자신만의 생태계 구축에 총력을 기울인다. 이 생태계가 산업 한 축으로 떠오르는데, 우리나라 의료IT 생태계는 어떻게 평가하나.
◇이흥로=우리나라에서는 생태계를 '플랫폼'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플랫폼 중요성이 강조되는 나머지 플랫폼 강박증까지 있는 것 같다. 다양한 국가 과제가 쏟아지고, 이것만 개발되면 생태계가 조성될 것처럼 이해한다.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 중인 구글도 의료IT를 하기까지 10년 이상 투자를 했다. 이런 것을 간과하고 플랫폼을 하겠다고 해서는 안된다.
◇황희=구글, MS, AWS 등 최근 의료IT시장에서 주요 플레이어로 부상한 기업은 전문적인 의료 역량은 부족하다. 대신 이들은 경쟁력 있는 헬스케어 스타트업, 벤처를 모아서 자신 영역에서 마음껏 연구, 사업화하도록 돕는다. 개별 기업은 물론 기업 간 손잡고 싶을 때 IT 인프라까지 제공하면서 세력을 확장한다. 생태계와 플랫폼은 비슷한 의미로 해석되지만, 생태계는 한 기업이 만들 수 없고 플랫폼은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고전적 의미 플랫폼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개방형 협업과 같은 많은 플레이어가 놀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의료IT 생태계는 열악하다.
◇김종재=생태계 구성원도 적지만 이들을 모으는 중심축도 부재다. 구글, MS 같이 생태계를 조성하려면 우선 중심축이 많은 포트폴리오를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구글이나 MS처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플랫폼이 다양한 기업이 없다. 이런 기업은 단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제한된 국내 시장 속에서 이미 글로벌 생태계를 구축한 IT공룡과 경쟁도 어렵다. 우리만의 의료IT 생태계 모델을 만드는 것이 과제다.
◇백롱민=생태계가 만들어지려면 연구하고 돈을 벌고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의료는 여전히 산업으로 바라보기 조심스럽다. 공공재적 성격이 강해 산업이나 돈 이야기를 하면 큰 비판에 직면한다. 정부도 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풀어보려고 규제 샌드박스나 플랫폼 구축 등을 추진하지만 여전히 벽이 높다. 우리나라에서 구글이나 MS 같은 기업이 나오기는 어려운 구조다.
◇사회=올해 행사에서 국산 HIS를 내세운 이지케어텍-분당서울대병원은 전시 참여기업으로는 최고등급을 획득해 부스 위치와 크기도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의료IT 시장에서 통할만한 무기는 어떤 게 있나. 그리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점은 무엇인가.
◇황희=우리나라에서 의대와 공대는 가장 똑똑한 사람이 가는 곳이다. 이들이 졸업해 병원과 IT회사로 취직하는데, 두 집단을 융합한 의료IT 영역은 두뇌로만 따졌을 때 뭘 해도 실패할 수 없는 환경을 갖췄다. 하지만 생태계 조성부터 비즈니스까지 모두 실패하는 이유는 전략을 잘 못 세웠기 때문이다. 이지케어텍이 분당서울대병원에 구축한 초기 HIS 모델을 영문으로 바꾸는데만 100억원을 투입했다. 글로벌 시장을 생각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영문 버전을 개발 안하는 곳이 아직도 많다. 우리나라는 기술은 유리한데 전략이 부재한 상황에 놓였다. 적절한 기술을 선정해 전략 수립을 지원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무기가 나올 것이다.
◇김종재=의료 AI는 우리나라 의료IT 영역 기대주로 꼽힌다. 상대적으로 많이 축적한 의료정보를 바탕으로 IT기업이 AI를 접목해 비즈니스를 창출한다. 이 영역은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역이고,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가졌다 해도 산업화에 도달할 때까지 생존할 지는 미지수다. AI만 하더라도 병원과 긴밀한 협업이 필요하며, 글로벌 시장에 진입하는 지원도 요구된다. 의료AI 솔루션을 개발했지만 의료기기로 인정조차 못 받는 상황이 나오는데, 글로벌 진출은 꿈도 못 꾼다. 병원과 협업, 제도 및 글로벌 진출 지원 등을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
◇백롱민=의료 분야에 AI는 구글과 IBM 등 글로벌 IT기업이 앞서나간다. 하지만 아직까지 절대 강자는 없다. 우리나라 기업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여전히 표준화, 연계 이슈가 있지만 우리나라가 보유한 의료정보 양과 질은 세계 수준이다. 데이터를 활용한 의료AI는 가능성이 있다. 다만 처음부터 명확하게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야 한다. 이지케어텍이 HIS '베스트케어'를 개발할 때도 처음부터 세계시장 진출을 목표로 했다. 한 우물만 판 결과 중동과 미국 진출에 성공했고 이제 중국, 일본을 노린다.
◇이흥로=AI가 장차 우리나라 의료IT 산업 기대주라는데 동의한다. 우리나라에서 AI는 대형병원이 밀집된 데이터를 갖고 있어 머신러닝에 유리하다. 개발뿐만 아니라 시범 적용까지도 수월하다. 다만 개발된 결과물을 실제 적용해야 하는데 장애물이 존재한다. AI를 개발한 기업에게 의료기관이나 전문가가 기술 피드백을 주는 원활한 채널과 수가 적용 등 사업화를 장려할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결국 인센티브와 연관되는데, 경쟁력 있는 AI 벤처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달려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기술적으로 국제표준을 필수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이번 HIMSS에서 구글, AWS, MS 등이 공개한 AI 플랫폼 역시 HL7과 같은 국제표준을 적용했다. 우리나라도 처음부터 국제표준을 따라야 글로벌 시장 진출에 장벽을 줄일 수 있다.
올랜도(미국)=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