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는 말이 있다. 안정된 세상보다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혼돈을 정리하고 안정을 도모하는 영웅이 더욱 돋보이기에 나온 말로 풀이된다. 역사에서도 난세의 영웅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중국 역사에서 춘추전국시대 영웅들, 삼국지 주인공들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등에 수많은 영웅이 등장한다.
사람은 아니지만 산업에도 영웅은 존재한다. 가까운 예로 지난해까지 한국 수출 산업을 이끈 반도체를 꼽을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은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다른 산업이 부진한 가운데에서도 국내 수출 산업을 떠받친 영웅들이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지난해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액은 사상 최대인 2204억달러(약 247조7076억원)를 기록했다. 무역수지 흑자도 역대 최고였다. 전체 수출 품목으로 확대해도 반도체 비중은 21%나 된다. 반도체 한 품목에서만 1281억5000만달러(144조278억원)를 수출했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했다. 지난해 사상 최고 수출에도 올해 한국 경제에는 위기감이 감돈다. 정확하게는 이미 위기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다. 내수와 수출이 동반 부진하며 활력을 잃고 있다. 수출은 지난해 12월에 이어 올해 1월까지 2개월 연속 감소했다. 수출이 2개월 연속 감소한 것은 2016년 10월 이래 2년 4개월 만이다. 반도체 수출도 급감했다.
지금 우리 경제 상황은 난세다. 난세가 길어지면 백성이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을 아는 만큼 정부도 기업도 난세를 헤쳐 나갈 새 영웅을 갈구한다. 정부가 연초부터 활발한 친 기업 행보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이제는 영웅이 좀 더 빨리 등장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고, 맞춤형 지원을 확대할 때다. 과연 어떤 산업이 경제를 떠받칠 영웅으로 떠오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