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줄 알았던 전염병 홍역이 귀환했다. 홍역 퇴치국가로 청정지역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 불안감이 커진다. 가족 간 모임이 많고 해외여행까지 몰리는 설 명절을 앞두면서 보건당국도 긴장한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20명의 확진환자가 발생했고 올 들어 총 37명(25일 현재)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잊혔던 홍역은 해외에서 귀환했다. 대유행 중인 동남아시아, 유럽 등을 방문하다 감염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려할 만한 점은 여전히 홍역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미접종자는 본인은 물론 주변을 감염시키는 매개체가 된다.
전국 대유행 가능성은 적다. 우리나라는 홍역 백신 접종률이 98%에 달해 국민 대부분이 항체를 갖는다. 하지만 이번을 계기로 백신 거부자와 의료인 감염, 홍역 돌연변이 연구 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2014년 이후 최대…해외에서 대부분 유입
우리나라는 2006년 공식적으로 홍역 퇴치를 선언했다. 8년 후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증하는 홍역 퇴치국가로 인정받았다.
홍역 퇴치국가라고 해서 환자가 단 한명도 없는 것은 아니다. 환자는 있지만 국가 전체로 확산할 가능성이 거의 없고 충분한 백신까지 구비된 상태다. 실제 우리나라 홍역 환자는 매년 발생한다. 심지어 WHO 홍역 퇴치국가 인증을 받은 해인 2014년은 442명 환자가 발생해 대유행했다. 이후 2015년 7명, 2016년 18명, 2017명 7명으로 꾸준했다. 지난해 20명, 25일 현재 총 37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전염성이 높은 특성 때문에 집단발생이 대부분이다. 37명 확진환자 중 29명이 대구, 경기도에 몰렸다. 이어 서울과 경기도가 각각 3명, 전남과 인천이 각각 1명씩으로 모두 개별 감염사례다.
현재까지 조사된 홍역 바이러스 유전자형은 B3와 D8이다. 모두 동남아시아에서 유행하는 유전자형이다. 개별 감염 사례자 8명 중 6명은 태국, 베트남, 필리핀, 대만을 여행했다. 감염경로가 국외에서 유입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국내에서 발견되는 B3, D8 유전자형은 동남아시아와 유럽에서 유행하는 형태로, D8은 작년 경기도에서도 발견됐다”면서 “B3 역시 미국에서 대유행을 일으킨 홍역 바이러스인데 현재 발생하는 홍역은 대부분 국외에서 유입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백신 미접종자가 홍역 매개체로
홍역 퇴치국가에서 갑작스럽게 환자 수가 늘어난 것은 백신 미접종자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생후 12~15개월, 만 4~6세 두 차례 MMR(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 접종을 권장한다. 한번만 맞아도 홍역 예방효과는 93%에 달한다.
우리나라 1, 2차 홍역 예방접종률은 97~98%로 매우 높다. 국민 대부분이 홍역 바이러스에 항체를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홍역이 발생하는 이유는 백신을 맞지 않은 영유아, 접종 거부자 등과 접종은 했지만 시간이 오래돼 효과가 떨어진 경우다.
실제 집단 유행했던 대구와 안산은 환자 대부분이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영유아였다. 특히 안산 사례는 확진 판정을 받은 영유아가 백신 미접종자인데다 거주지가 동일해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손장욱 고대안암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안산 집단감염 사례는 종교 등을 이유로 백신을 거부한데다 거주지도 동일해 홍역이 전염될 최적 조건”이라면서 “세계적으로 백신 거부 운동이 확산되면서 홍역 발병도 줄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WHO는 '세계 10대 보건 위협에 관한 보고서'에서 백신을 맞지 않는 사람이 늘면서 홍역 퇴치국에서도 홍역이 다시 살아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홍역에 잠재적으로 취약한 사람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여행 등으로 국외에서 걸려 국내로 전파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전국 확산 가능성 낮아…인식 제고 계기로 삼아야
홍역은 홍역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으로, 항체가 없으면 90% 이상 전염된다. 발열, 기침, 콧물, 결막염 등을 동반한다. 병이 심해지면 발진과 복통, 중이염, 기관지 폐렴까지 이어진다. 전염성은 강하지만, 심각한 합병증은 없다.
평년보다 환자 수는 많지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해외와 비교해 우리나라 홍역 환자 수는 극히 적다. 브라질에서는 작년 2월부터 이달 초까지 총 1만274명이 홍역에 걸렸다. 사망자도 12명이나 발생했다. 미국 역시 지난해 10월부터 2개월간 뉴욕에서 152명이 걸렸고, 베네수엘라에서도 약 1년간 910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아시아에서도 작년 12월 기준 중국 3714명, 말레이시아 1531명, 필리핀 4412명 등이 홍역에 걸렸다.
손 교수는 “매년 수백명에서 수천명이 걸리는 다른 국가와 비교해 우리나라 홍역 환자 수는 극히 미미하다”면서 “접종 이력이 있으면 홍역에 걸리더라도 가볍게 앓고 끝나기 때문에 전국 단위로 확산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홍역 바이러스 종류는 8개다. RNA 바이러스 특성상 돌연변이로 탄생한 아형도 23개에 달한다. 다행인 것은 종류가 다양해도 혈청형이 같다는 점이다. 홍역 항체는 헤마글루티닌 수용체에만 결합하는데, 이 단백질 유전자형은 한 가지 뿐이다. 한번 홍역에 걸렸거나 백신을 맞아 항체를 갖고 있으면 대부분 두 번 다시 걸리지 않는다. 이번 홍역 사태도 전국에서 미접종자를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확진 환자가 발생하겠지만, 대유행처럼 퍼질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다.
이번을 계기로 국가 차원에서 홍역 등 감염병 정책을 다시 살피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종교나 개인 신념 때문에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이 늘었다. 잠재적으로 홍역에 걸릴 확률이 높은데다 주변으로 전파할 매개 역할도 한다. 이들을 설득하고, 백신을 홍보할 고민이 필요하다.
이 교수는 “최근 홍역 항체가 있지만 바이러스를 못 이겨 다시 걸리는 사례가 홍역 퇴치국가에서 보고되는 만큼 백신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정부는 종교적 이유로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을 설득하고, 감염병에 특히 취약한 의료진을 보호할 장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