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공정경제 실현을 위해 대기업에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했다.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를 적극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법·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도 수정 보완 없이 밀고 갈 방침이다. 재계는 기업 경영 방어권 약화 등을 이유로 우려를 표했다. 해외 흐름과 상반되는데다 예상효과도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문 대통령은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정경제 추진전략 회의에서 “일본의 한 중소기업 연구소에서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질 때 우리는 대기업에 기술을 빼앗긴 중소기업의 사례를 계속해서 들어야만 했다”며 “공정경제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책임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주제 공정경제회의는 지난해 11월 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데 이어 두 번째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정부는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하게 이행하겠다”며 “틀린 것은 바로잡고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에 기업지배구조 개선, 상생협력, 일감 몰아주기 근절 등에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상생 경제는 대기업 혁신·성장을 위해서도 꼭 이뤄져야 할 일로, 정부는 대기업 경영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를 위해 소유지배 구조를 개선해왔다“고 설명했다.
자산 10조원 이상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의 순환 출자가 2017년 9월 93개에서 작년 12월 5개로 대폭 감소했다.
또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대기업의 총수 일가 지분을 축소해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사익 편취도 해소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부 노력에 대기업이 적극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국회에 공정경제 관련 법안 처리도 당부했다. △기업 소유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 △상생 협력을 위한 유통산업발전법과 상생협력법 △갑을 문제 해소를 위한 가맹사업법과 대리점법 △소비자 보호를 위한 집단소송법과 금융소비자보호법 등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상법·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재계가 꾸준히 우려를 표한 사안이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해외 사례와 역행한다는 게 재계 주장이다. 국내 기업 경영 방어권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대한상의는 “복합쇼핑몰과 전통시장·소상공인은 주업종이 달라 경쟁관계가 크지 않다”며 “복합쇼핑몰 규제는 입점상인과 주변상권, 소비자 후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후 추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놓고도 재계 우려가 크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전날 국민연금이 한진그룹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행하기로 한 것을 두고 “다른 기업까지 확대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원칙이 분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사후 브리핑을 통해 “올해 특히 공정경제 성과를 국민들이 일터와 실생활에서 직접 느낄 수 있도록 '국민체감형 과제'를 중점 발굴·추진하기로 했다”며 “소비자 권익 보호 관련해 예를 들면 보험약관의 경우, 소비자들이 알기 쉽도록 '용어'를 변경하고 소비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개선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고 전했다.
또한 정부는 공공 분야 불공정 거래관행을 근절할 수 있도록 △주요 공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 상시 모니터링 △공공공사 입찰 시 적정 자재단가 반영한 입찰상한가 설정 의무화 △자율준수 프로그램(CP) 확산 등도 추진한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