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 화두는 '공공성' 강화다. 국민 모두에게 국가가 보편타당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핵심이다. 공공의료 정의와 역할을 두고 이견이 엇갈린다. 대부분 병원이 건강보험이라는 공적 재원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민간의료 서비스와 구분이 어렵다. 다수가 공공의료 기관으로 이해하는 지방의료원은 의료 서비스 수준과 자생력이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서울특별시 서울의료원은 기존 공공의료 프레임을 깨고,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만족하는 새 모델 제시에 집중한다. 본연 기능인 의료 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게 첫 번째다.
김민기 서울의료원장은 “지방의료원 같은 공공의료기관은 취약계층이 주로 이용하고, 서비스 수준이 낮은데다 돈이 안 되는 영역을 담당한다는 인식이 강하다”면서 “취약계층이 많고 세금으로 운영된다고 해서 의료 서비스 수준이 낮아도 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병원 환경부터 개선했다. 병원 내 디자인센터를 설치해 환자 이용현황과 요구사항을 파악했다. 환자 진료 동선을 파악해 대기실, 안내판 등을 전면 개편했다. 응급실 서비스 디자인도 전면 개편해 불안한 보호자를 안심시키고 의료진 혼란을 최소화했다. 무엇보다 환자와 의료진 간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교육에 힘썼다.
김 원장은 “환자 40%가 취약계층인데, 사회 분노가 병원에서도 표출돼 어려운 점이 많았다”면서 “디자인센터를 중심으로 이용객 동선에 최적화한 시설 배치, 편안함을 주는 인테리어로 교체하고 환자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환자 분노도 해소됐다”고 말했다.
진료 환경 개선과 함께 의료 서비스 질도 높였다. 2020년 준공 목표인 암센터가 대표적이다. 그동안 공공의료기관은 출산, 감염, 응급 등 필수의료 제공에 집중했다. 암 등 치료가 비싼 질병은 대형병원이 도맡는다. 김 원장은 암 환자가 급증하면서 공공의료기관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암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2011년과 비교해 우리 병원을 찾는 암 환자가 두 배 이상 늘었는데, 대부분 대형병원으로 돌려보냈다”면서 “대부분 대형병원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계층인데, 우리도 대형병원처럼 최첨단 치료까지는 못하더라도 저렴한 비용에 포괄적인 암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암센터 건립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병원은 환자 중심 공간이지만 서비스 공급자인 의료진 처우도 중요하다. 취약계층을 포함한 시민에게 공공의료 서비스 제공자로 자부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김 원장은 취임 후 '좋은 일터 만들기 태스크포스(TF)'를 구성, 직원이 만족하는 아이디어를 꾸준히 모은다. 환자 폭언·폭력 없는 병원, 끼니 거르는 간호사를 위한 해결방안, 원내 숨은 공간을 활용한 휴게공간 등 다양한 의제가 논의됐다. 작년부터 간호 질 향상을 위해 근로단축제도 실시했다. 2020년까지 60명의 간호사를 채용해 근무환경을 개선한다.
진료, 치료에 국한했던 공공의료기관 역할을 '시민건강연구소'로 확대한다. 진료 정보를 분석해 시민 건강관리 서비스와 정책을 발굴한다. 서울시 복지정책과 접목, 시민 맞춤형 보건복지 체계를 지원한다.
김 원장은 “2012년과 비교해 올해 진료수익과 진료인원은 각각 87%, 37%가 성장했으며, 시민 만족도도 95.1점으로 10점 가까이 향상됐다”면서 “병원 본연 역할인 질병 치료를 넘어 시민 건강을 연구하고 관리하는 연구소로 역할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