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났습니다] 정태봉 유진통신공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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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동욱기자 gphoto@etnews.com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청연로에 자리잡은 응암산업단지. 앞마당에 케이블을 감아 놓은 지름 5m는 족히 돼 보이는 커다란 목재 롤이 가득한 공장이 눈에 들어온다.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동축케이블 전문업체 유진통신공업 생산동이다. 바람이 제법 쌀쌀해질 무렵 이 곳에서 정태봉 유진통신공업 대표를 만났다.

유진통신공업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케이블 업체지만 사실은 소리 없이 강한 알짜기업이다. 다른 중소기업은 날로 어려워지는 경영환경에 생존을 걱정할 때에도 이 기업은 오히려 매출이 늘어나는 호황을 몇 차례 누렸다.

“십년 터울로 세 번 행운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골프를 즐기면서 경험한 홀인원도 세 번입니다.” 정태봉 대표는 지난 30년 동안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배경을 '운'으로 돌렸다. 10년에 한 번 꼴로 찾아온 기회가 설립 첫 해에 1억원에도 못 미치는 매출을 올리던 시골 기업을 30년 만에 7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강소기업으로 키워줬다는 것이다.

그가 들려주는 유진통신기업 성공스토리는 듣는 이의 시공간을 비틀었다. 때는 1980년대. 당시 주택에서는 TV 안테나를 별도로 설치해 사용했다. 지붕위에 기둥을 세우고 여기에 T형 안테나를 묶어두는 형태였다. 방송국 전파가 약한 시골에서는 뒷동산 꼭대기에 안테나를 설치해야만 TV를 볼 수 있는 그런 시절이었다. 안테나와 TV 사이는 필름 모양의 납작한 안테나 케이블로 연결했다. 당시 안테나 케이블은 동축 케이블 형태인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지금처럼 둥근 형태가 아니라 1㎝ 정도 폭을 지닌 납작한 구조였다. 양쪽 끝에만 전도체인 동선이 들어있고 중간 부분은 피복을 군데군데 연결한 것이 마치 영화 필름처럼 보였다.

정태봉 대표가 유진통신공업을 설립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새로 설립한 것이 아니라 인수했다는 표현이 맞는다. 1987년 친구가 운영하던 전선회사가 부도를 맞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그는 친구 생각에 무작정 회사를 인수했다. 어떻게든 살려보자는 의도였다. 사실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나서야 대학에 입학한 터라 대학 동기생들 보다는 나이가 많았다.

“당시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던 아내에게 1000만원을 빌렸고, 나머지 1700만원을 빚으로 떠 앉는 조건이었습니다. 제조 설비는 그대로 물려받았지만 문제는 공장 부지였지요. 빈손으로 빚을 떠앉고 시작한 사업이라 원자재 구입비도 없어 거래처마다 “믿고 밀어달라'고 머리를 조아리며 다니는 처지였습니다. 급한대로 인천시 나환자촌에 위치한 양계장을 빌려 공장으로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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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대표는 서울시립대 회계학과를 졸업한 회계학도다. 처음에는 케이블을 생산하는 것초자 녹록치 않았다. 모든 업무를 직원들에게 물어가며 익혀나갔다. 다행이라면 LS전선의 전신인 금성전선에 납품할 수 있는 시기였다는 것이다.

“첫 번째 기회는 이듬해 바로 찾아왔습니다. '88올림픽' 특수가 열린거죠. 정부가 200만호 건설정책을 펼치면서 케이블 수요가 폭발했습니다. 이후 3~4년 동안은 없어서 못팔았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그런 호황을 누렸습니다. 1년 만에 3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습니다. 당시 물가로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그는 지금도 당시를 회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오는지 입가에 미소를 한껏 머금었다. 기회는 1992년에도 이어졌다. 유선방송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매출은 바로 30억원으로 뛰어 오르더니 1995년에는 70억원, 2000년에는 153억원으로 급증했다.

그러는 사이에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중국산 제품이 저가 공세를 펴면서 가격 경쟁에 휘말린데다 수요가 줄어드는 등 여러 가지 악재가 등장했지만 유진통신공업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태봉 대표는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2000년 10월 미국 암페놀 그룹의 CATV용 케이블 전문 자회사인 TFC(TIMES FIBER COMMUNICATION)에 회사를 매각했다.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또다시 케이블 수요가 폭발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매각 대금으로 300억원을 챙겼다. 이후 유진통신공업은 TFC의 한국지사 겸 생산공장 역할을 하고 있다.

조건이 있었다. TFC의 다른 해외 법인과 달리 유진통신공업은 사명에 '암페놀' 또는 'TFC'를 붙이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 오너에서 물러나 전문경영인이 됐지만 여전히 유진통신공업은 그가 운영했다.

정 대표는 “그만큼 암페놀 본사에서 유진통신공업에 보내는 신뢰가 컸다”면서 “유진통신공업은 암페놀과 함께 세계 시장에 케이블을 공급하는 업체가 됐다”고 설명했다.

역설적이게도 암페놀과의 합병은 유진통신공업이 국내 시장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매출은 계속 늘어 지난해 690억원을 찍었다.

“최근 또 다른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5G 시대가 열리면서 또 다른 케이블 수요 폭발이 기대됩니다.” 정 대표는 지난 8월 또 한번의 홀인원을 했다. 그는 이번에도 스스로를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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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행운이란.

▲1988년과 1992년, 그리고 2000년에 찾아왔다. 1988년은 올림픽을 처음으로 개최하던 때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주택 200만호 건설 정책을 폈다. 가정용 수요가 폭발했다. 집집마다 TV를 보려면 안테나를 설치해야 했으니 그 수요가 상상을 초월했다. 매출이 바로 3억원 가까이로 급증했다. 회사 초석을 반듯하게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설립 당시 3명에 불과하던 직원도 40명 가까이로 불었다.

1992년에는 유선방송이 시작됐다. 지역마다 유선방송사업자가 문을 열면서 봉고차에 동축케이블을 싣고 다니며 공급했다. 지금 있는 세종시 응암산단에 입주한 것도 그 때였다. 세 번째는 2000년도에 열린 인터넷 시대다. 인터넷 보급이 급격히 늘면서 케이블 시장은 '노났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시작부터 성장가도를 달릴 때, 지금까지도 운이 좋았다.

-한창 성장할 때 회사를 매각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적기라고 생각했을 뿐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런데, 지금와서 보니 그때 매각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유진통신공업이 남아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TFC는 미국에서 가장 큰 동축케이블 업체다. 그런데 암페놀 회장은 두 번 만에 매입을 결정했다. 나중에 '왜 그리 빨리 결정했냐'고 물으니 '사람을 보면 아는 것'이라고 하더라. 암페놀과 유진통신공업 사이에 구축된 신뢰가 그만큼 크다고 보면 된다.

-수많은 암페놀 해외법인 가운데 유진정보통신만 독자 사명을 쓰는 이유는.

▲암페놀은 우주항공, 군수산업 등 200개 자회사를 거느린 글로벌 그룹이다. 국내에도 휴대전화와 센서 등 분야에 5개 자회사가 있다. 우리만 '암페놀' 명칭을 붙이지 않는 이유는 한마디로 '흑묘백묘론'이다.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얘기다. 유진은 지난 32년간 남다른 경험과 노하우를 쌓아왔다. 수익도 많이 낸다. 남들이 1% 이익 낼 때 우리는 7~8% 낸다.

알아서 생산 극대화, 제품 표준화, 품질 완벽화를 구현하고 있으니 굳이 간섭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합병 이후인 2001년부터 TFC 지원 없이도 200억원 매출을 달성했다. 인터넷 케이블 모뎀 전용 인입선과 이동 통신용 저손실 케이블도 자체 개발해 수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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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페놀이 전폭 신뢰하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면.

▲기본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을 충실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앞으로도 그동안 지켜온 고객우선주의에 맞춰 정도를 걷고자 한다. 품질에 완벽을 기하고 있다.

-나름대로의 경영철학이 있다면. ▲직원과의 일체감이 지금의 유진을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직원들과 회식을 자주한다. 특히, 해외로 출장을 나가는 직원과는 꼭 식사를 같이 한다. 직원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믿는다. 사람이 자원이다. 기업가는 근로자에게 최대한의 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근로자는 자신이 회사를 경영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5년 근속한 직원에게는 금 5돈, 근속 20년이면 금 20돈을 선물한다. 직원들과 서로 신뢰하고, 아껴주는 사이가 돼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사훈도 '주인정신, 한마음 한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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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계획은.

▲현재 LS전선, 가온전선, 대한전선 등 대기업에 동축케이블과 제어용 케이블을 납품하고 있다. KT스카이라이프,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티브로드, CJ헬로비전, 딜라이브와 같은 기간망 사업자와 종합유선방송사업자도 주요 고객이다. 당장은 국내 동축케이블 시장 점유율 1위를 사수하는 것이 목표다. 5G용 신규 아이템을 구상하고 있다. 또 남미 수출도 늘려야 한다.

당장 올해 목표는 영업이익 8.5%, 생산성 17%, 기초품질 100% 향상 및 원가 10% 절감 등을 내걸고 있다.

-유진통신공업의 또다른 강점이 있다면.

▲특이하게도 은행 빚이 한 푼도 없다. 부채비율 제로 기업이다. 무리하게 확장하기보다는 유진통신공업 이름에 걸맞게 본분을 지키면서 안전하게 품질경경을 하자는 주의다.

케이블 산업은 사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과 경쟁이 날로 심화되는 레드오션이다. 국내 기업은 벌써부터 이들과 경쟁에서 밀리는 모양새다. 다만, 최근 미국과 중국이 갈등을 빚으면서 TFC가 중국 공장에서 수급하던 물량을 우리한테 돌리고 있다. 지금 우리는 공장을 풀 가동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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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봉 유진통신공업 대표는…

1960년 충청북도 보은군에서 태어났다. 대전고와 서울시립대 회계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직후 친구가 운영하던 회사에 몸담으면서 유진통신공업과 인연을 맺었다. 1987년 부도가 난 회사를 친구에게 인수, 경영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회사를 인수할 당시 7900만원에 불과했던 매출액 규모를 이듬해 2억9000만원으로 끌어올렸다. 이어 1992년 30억원, 2000년에는 70억원대 매출을 달성하며 유진통신공업을 반석위에 올려놓았다.

2000년 10월 미국 암페놀 그룹의 CATV용 케이블 전문 자회사인 TFC(TIMES FIBER COMMUNICATION)에 회사를 매각한 뒤 전문경영인으로 유진통신공업을 이끌고 있다.

대담=김순기 전국총괄 부국장


정리=강우성기자 kws9240@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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