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정부 카드수수료 인하 후폭풍...후방산업 줄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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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9번째 카드수수료 인하 대책을 발표하면서 카드사가 수수료 인하가 충분히 감내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카드업계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고 카드산업 건전성을 높이는 계기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는 현실은 다르다. 관련 산업 등의 붕괴가 불가피하다.

업계는 단순히 카드수수료를 인하해 영세 가맹점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정책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카드 수수료에 얼마나 많은 산업과 사업자, 소비자가 연결돼 있는지, 실제 수수료 인하분이 영세가맹점에게 혜택으로 돌아가는지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심성 졸속 대책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은 신용카드 인프라 면에서 단연 최고 수준이다. 현금 없이 어디를 가든 카드 한 장만 있으면 대부분 결제활동이 가능하다. 반면 유럽을 비롯한 대부분 선진국도 카드 결제 단말기가 혼용이 되지 않고 카드사별로 결제 인프라를 별도 구비해야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카드 인프라는 30년간 IT기술을 활용해 일군 신용카드사와 밴사의 합작품이다.

물론 그간 카드사가 그동안 막대한 이윤을 창출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막대한 인프라 구축 노력이 필요했다. 이런 성과가 철저히 배제된 것이다.

전자신문은 이런 유관 산업의 피해를 점검하기 위해 카드산업의 한 축을 담당한 12개 밴사의 수익 체계를 입수, 분석했다.

◇3만 명 영세 사업자, 카드수수료 인하로 '구조조정' 위기

3년 새 밴사는 계속되는 카드수수료 인하로 약 1조원에 가까운 밴 수수료가 깎였다.

정부 카드수수료 인하로 영세가맹점에게 혜택을 주자는 취지는 시장 참여자 모두 환영한다. 하지만 신용카드지불시스템의 다른 측면은 간과했다.

정부가 발표한 신용카드수수료 인하 핵심은 연 매출 5억원이상 10억원이하 가맹점은 신용카드수수료율을 2.05%에서 1.4%로 인하하고, 연 매출 10억원이상 30억원이하 가맹점은 2.21%에서 1.6%로 인하한 것이다.

과거 신용카드 수수료율 상한은 2007년 이전 4.5%에서 2018년 0.8~2.3%까지 낮아진 상태였다.

카드산업 후방 사업자는 일종의 도급업자로 분류돼, 지속적인 매출 하락 압박을 받는다.

12개 밴사가 공개한 밴 수수료를 보면 대행수수료는 크게 승인, 수거, 매입, 기타 등 4가지 중계수수료를 받는다. 전체 합계로만 보면 2016년 12개 밴사 총 수수료는 1조1807억8600만원이다. 2017년 누계로는 1조1660억800만원이다. 반면 2016년 비씨·신한·KB국민·현대·삼성·롯데·우리·하나 등 8개 카드사가 거둬들인 가맹점 수수료 수익은 11조601억700만원이다. 2017년에는 11조6783억5700만원으로 늘었다. 8개 카드사 모두 순익은 지속 증가했다. 하지만 이렇게 순익을 낸 이유를 잘 들여다봐야한다.

정부 카드수수료 인하 압박에도 카드 결제 비중이 높아진 덕분이다. 또 카드사가 밴 수수료를 지속 인하한 효과가 상존한다. 산업계에 만연한 하도급 마른수건 쥐어짜기가 신용카드 시장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결국 신용카드 후방사업인 밴업계는 카드사 수수료 순익은 늘었지만 되레 받는 중계 수수료는 지속 감소하고, 카드 결제 트랜잭션 증가로 업무량만 가중되는 '하도급업자' 취급을 받고 있다.

◇내년 밴 수수료, 7%대로 추락

2016년 카드사 가맹점 수수료 수입 대비 밴 수수료는 9.3%다. 1분기 9.4%에서 2분기 9.7%, 3분기 9.5%, 4분기 8.6%로 아주 큰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2017년 4분기 8.7%를 기록했던 수수료 비중은 올해 1분기 8.2%대까지 추락했다. 정부 카드수수료 인하로 내년에는 카드수수료에서 밴수수료 비중은 7% 이내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카드사가 정부 대책 이후 긴급회의를 소집, 밴수수료 인하방안 검토에 착수했다. 또 한 번 마른수건을 쥐어짜 위기를 넘기자는 전술이다.

카드업계는 모바일결제 비중이 늘고, 정부의 인하분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결국 밴리스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현행 밴 대행 체제를 아예 없애자는 말까지 나온다.

반면 밴사는 억울하다고 토로한다. 한국 신용카드 지급결제 인프라를 함께 해온 동료에서 이제는 계륵 취급을 받는 처지가 됐다.

동지의 관계에서 이제 신용카드사와 밴사는 생존을 위한 적이요, 치킨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한 보이지 않는 수수료 전쟁을 시작한 셈이다.

◇밴대리점, 신용카드 모집인 사라질 판

밴사는 가맹점 실제 관리를 위해 산하에 밴대리점 조직을 구축한다. 밴 수수료에서 일정 부분을 가맹점 관리비 명목으로 밴 대리점에 떼어준다. 공생관계다.

카드 수수료 인하→밴 수수료 인하→밴 대리점 관리비 인하, 이 악순환이 또 한 번 재연된다.

밴 대리점은 절반 이상이 문을 닫을 처지에 놓였다. 올해 1월 밴 대리점은 소액결제 관련 역마진 구조로 돌아섰다. 소액결제가 많아질수록 매출이 마이너스가 되는 구조다. 인건비와 회사 관리비도 건지지 못하는 형국이다. 무서명 거래에 대한 보존비용은 카드사와 밴사가 보존해준다. 이 또한 언제 깨질지 모른다.

카드 모집인도 마찬가지다. 1만5000여명이상의 모집인 구조조정 착수에 돌입했다. 일부 카드사는 아예 모집인 체계를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한 카드사 고위 관계자는 “회원 모집에 들어가는 인건비와 관리비를 줄일 수 밖에 없다”며 “콜센터와 카드 배송 인력도 점차 줄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카드 소비자 불편을 가중하는 역효과가 된다.

한국신용카드 한국조회기협회 관계자는 “밴대리점은 고객과 가맹점간 카드 결제에 대한 모든 관리와 대행을 책임져주는 곳인데, 카드수수료 인하 여파로 이들 약자도 거리로 나앉게 될 판”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결국 정부의 카드수수료 인하 강행이 카드사는 물론 후방산업인 밴, 밴 대리점, 모집인 시장까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방안은 결국 가맹점별 수수료 차등화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정부가 카드수수료 인하를 발표한 상황에서 다시 주워 담을 논리도 이유도 없어 보인다. 다만 앞으로 신용카드 산업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그 뒤에 후방산업도 마찬가지다.

과거 농협은행 보안 장애로 보름 이상 결제 시스템이 중단된 적이 있다. 이 때 결제 대행과 위기관리를 맡은 곳이 밴사다. 만약 밴업계 백업망이 없었다면 결제 대란이 발생했을 것이다.

밴사는 신용카드 시장의 신경망이다. 국내 카드사가 여러 곳이 존재하고 이들 카드 회원 결제를 하나의 단말기로 구현한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택시에서도 카드결제가 가능한 이유다. 카드 거래 뿐 아니라 가맹점 현금거래도 POS단말기를 통해 밴사 산하 대리점이 매출과 재고관리를 해준다. 가맹점 입장에서도 꼭 필요한 서비스다.

하지만 여론이 좋지 않다. 소비자 가계부채의 원흉은 카드사. 가맹점 돈 뜯어가는 곳이 밴사로 인식돼 있다.

정부가 시장 자율 수수료 체계에 개입하는 것부터가 모순이다. 이들 또한 기업이다. 흙 파서 장사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정부는 막대한 순익을 보는 초대형 가맹점과 외국계 카드사 횡포를 막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비자카드는 2016년 5월, 1.0%였던 해외 결제수수료를 2017년부터 1.1%로 올리겠다고 국내 카드사에 통보했다. 카드사들은 비자카드 수수료 인상이 일방적이라며 공정위에 제소하고 0.1%포인트 인상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고 대납해왔다. 하지만 공정위는 결국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국내 카드사는 소비자에게 해외 결제수수료를 받아 해외 카드사에 전달하는 역할만 한다.

그럼에도 외국계 카드사는 국내 카드사에 막대한 결제수수료를 받고 있다. 결국 유니온페이 등 다른 해외카드사도 수수료를 인상, 국내 카드사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제로페이에서 카드사를 원천 배제한 것도 타격이 크다. 신용카드 결제망을 연동하지 않고 은행 직불방식을 고수해 정부사업에서도 카드사는 배제됐다. 더 이상 설 곳이 없다.

최적의 대안은 위기로 내몰린 카드사와 후방산업을 내칠게 아니라 어느 정도 경쟁할 수 있는 토양을 내줘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형마트 등 초대형 가맹점 대상으로 카드수수료 차등화를 추진해야 한다. 여전법을 개편해서라도 초대형가맹점에 부과할 수 있는 수수료 상한선을 정하고, 이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과열경쟁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대형마트 등 판촉, 마케팅 프로모션 등을 대폭 축소하고 오히려 이 같은 혜택을 중소형 가맹점에게 줘 결제 촉진을 꾀해야 한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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