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전 23승이라는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운 충무공 이순신이 전사한 노량해협. 이달 이곳에서 기억할 만한 세계 기록이 세워졌다. 세계 최초로 V자로 비스듬하게 세워진 경사 주탑과 평면이 아닌 3차원 케이블로 완성된 노량대교가 주인공이다.
노량대교는 교각 없이 주탑에 연결된 케이블로만 교량 상판을 지지하는 현수교다. 상판을 지탱하는 주탑과 주탑 사이 거리인 주경은 890m에 이른다. 특이한 점은 1㎞ 정도 거리 노량해협을 건너는 해상 교량이지만 해상에 주탑이나 교각이 없다는 것이다. 주탑을 육상에 둔 현수교로 설계해 한려해상국립공원과 인접한 청정해역 해양 생태계 파괴 문제를 해결했다.
V자 주탑은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됐다. 주탑을 육상에 설치하기 위해 마치 줄다리기를 할 때 몸을 기울이듯 기울였다. 세계 어디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기술이다.
노량대교는 9년이란 공사 기간에도 대형 재해가 단 한 건도 없이 준공됐다. 3D 모델링을 이용한 시뮬레이션 기술을 적용한 덕이다. 건설사는 공정 간 간섭 및 설계 오류를 사전에 파악해 리스크를 최소화시켰다고 설명했다.
노량대교로 대한민국 건설 기술 수준이 한 단계 도약했다는 평이 나온다. 노르웨이 등 해외 선진국이 기술을 공유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량대교가 건설 기술이나 부품 수출 길을 열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볼 만하다.
정부는 지난 6월 '건설산업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스마트 건설기술 연구개발(R&D)에 1조원 이상을 투입하고 산업 간 융합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제 샌드박스 도입도 검토한다고 밝혔다.
기술 개발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 역시 최저가 중심 발주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술과 도전에는 과감하게 높은 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국내 건설업은 업역 경계를 허물고 산업 구조를 혁신하겠다는 원대한 목표와 달리 몸살을 앓고 있다.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줄고, 부동산 규제로 국내 건설 시장은 축소되고 있다. 혁신을 통한 도전밖에는 답이 없다.
문보경 정책 전문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