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의 군사 긴장과 충돌 근원이 되는 일체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합의했다. 각종 군사 훈련 중단 등 파격적 합의도 포함됐다.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 이행을 점검한다. 상호 불가침을 위한 제도 장치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9일 서명한 '3차 평양공동선언' 합의문에서 한반도 군사 긴장 완화, 전쟁 위협 해소 조항을 1항에 담았다.
문 대통령은 “남과 북은 오늘 한반도 전 지역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위협을 없애기로 합의했다”면서 “남북 군사 분야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상시적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전쟁 없는 한반도가 시작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와 관련해 송영무 국방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은 '판문점선언 이행 군사분야 합의서'를 서명한 후 교환했다. 군사분야 합의서 서명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평양공동선언문 서명 직후 진행됐다.
합의서에는 서해상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한다는 내용과 함께 △비무장지대(DMZ) 내 GP(감시초소) 시범 철수 △공동 유해 발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 DMZ 평화지대화를 위한 방안이 담겼다. 육·해·공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 긴장과 충돌 근원이 되는 상대에 대한 일체 적대 행위도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 군사공동위도 가동한다. 군남북공동연락사무소처럼 군사당국도 상설협의체를 운영, 남북 협의를 제도화하기 위한 조치로 읽힌다.
11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각종 군사연습도 중지한다. 지상에서는 군사분계선 5㎞ 내에서 포병 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이 전면 중단된다.
해상은 서해의 경우 남측 덕적도 이북으로부터 북측 초도 이남까지, 동해는 남측 속초 이북으로부터 북측 통천 이남까지 수역에서 포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을 중지하는 한편 해안포와 함포 포구 포신 덮개 설치 및 포문을 폐쇄하기로 합의했다.
공중에서는 군사분계선 동·서부 지역 상공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 내에서 고정익항공기 공대지 유도무기사격 등 실탄사격을 동반한 전술훈련을 금지한다. 고정익항공기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동부전선은 40㎞, 서부전선은 20㎞를 적용해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하기로 했다. 회전익항공기(헬기)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10㎞, 무인기는 동부지역에서 15㎞, 서부지역에서 10㎞로, 기구는 25㎞로 적용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2004년 6월 4일 제2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서명한 '서해 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 관련 합의도 재확인하고 서해상에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기로 했다. 다만, 서해 NLL 기준 등면적으로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자는 우리측 제안을 북측이 완전 수용하지 않음에 따라 구체적 경계선 설정은 숙제로 남았다.
DMZ 평화지대화를 위한 GP 시범 철수와 공동 유해 발굴, JSA 비무장화 등에도 합의했다. 시범적 조치로 군사분계선(MDL) 1㎞ 이내 근접해 있는 남북 GP 각각 11개를 우선 철수한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를 위해 지뢰제거와 함께 초소 내 인원과 화력장비를 철수하고 불필요한 감시 장비도 제거한다. DMZ 내 공동유해발굴은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시범 실시한다. 유해 발굴 지역 내 지뢰 등은 올해 11월 30일까지 완전히 제거하고, 유해발굴을 위해 남북 간 폭 12m 도로도 개설하기로 했다. JSA 비무장화는 3단계로 진행한다. 남북은 합의서에서 유엔사령부를 포함, 삼자협의체를 구성해 비무장화를 이행하기로 했다. 양측이 근접거리에서 합동근무를 하는 등 구체적 방안까지 합의했다. 한강 하구를 공동이용수역으로 설정하고 남북 간 공동수로조사를 벌이는 한편 민간선박 이용도 군사적으로 보장하기로 했다.
이번 남북 군사 합의는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DMZ 평화지대화 △서해해상 평화수역화 △군사회담 정례화 등 군사적 긴장완화 및 신뢰구축을 위한 실제적 조치의 세부 이행 방안이다. 남북은 지난 6월 14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제8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 7월 31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제9차 장성급군사회담에서 세부 내용을 다듬어 왔다.
앞서 이번 회담에서 남북이 군사 분야 합의에 집중, 주목할 성과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회담 핵심 의제 가운데 경제협력을 비롯한 남북 관계 개선은 대북 제재라는 한계가 따르는 반면, 군사 협력은 기존 합의를 바탕으로 남북이 접점을 넓혀왔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번 합의를 사실상 '남북의 불가침 합의'로 평가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 공동언론발표가 끝난 뒤 “한반도 지상, 해상 또 공중에서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비무장지대를 평화 지대로 만드는 등의 방안을 합의했다”면서 “이는 사실상 남북한 불가침조약”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번 조치로 남과 북이 초보적 단계 군비 통제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실질적 불가침의 제도화방안”이라면서 “한반도의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위한 실천적 방안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보수진영은 안보 불안을 우려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북한은 핵을 꼭꼭 숨겨놓고 있는데, 우리는 모든 전력의 무장해제를 해버리는 결과를 만들어냈다”면서 “속 빈 강정에 불과한 공동선언도 문제지만, 군사적 합의도 절대 수용할 수 없으며 그에 상응하는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합의는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과 맞닿아있다”면서 “남북 양측이 비핵화 과정에서 '총질'을 하지 않겠다는 합의”라고 설명했다.
그는 “초기 검토 결과, 국회 비준 사항이 아니라 국무 의결로 결정할 수 있는 내용으로 파악했다”고 덧붙였다.
최호 산업정책부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