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행성으로 이주를 원하는 5000여명의 사람이 동면을 시작했다. 이들은 120년의 긴 우주여행 기간 동안 깨지 않고 지내다가 도착 서너 달 전에 차례차례 일어나 새로운 삶을 준비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두 사람이 갑자기 동면에서 깨어났다. 행성 도착까지 남은 시간은 90년. 동면 시스템은 고장 나 다시 잠들 수 없다.
다행인 것은 인공지능이 통제하는 우주선 내에는 항상 신선한 채소와 고기로 만든 음식이 가득하다는 점이다. 사람이 먹고 싶은 음식을 입력하면 인공지능은 갓 재배한 채소와 신선한 고기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제공한다. 2016년 개봉한 영화 <패신저스>에 등장하는 우주선 '아발론'에는 스마트팜을 이용한 '자판기'가 등장한다. 비단 패신저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백투더퓨처 등 여러 과학소설(SF)과 영화 속에서 이 같은 '스마트팜'은 미래 사회의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등장한다.
◇스마트팜은 이미 우리 곁에 있는 오래된 미래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스마트팜은 이미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농가에서 도입, 활용하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것처럼 로봇이 작물을 직접 재배하거나 음식을 만들어 주는 수준은 아니지만 여러 기술들이 접목되면서 '눈대중'과 '경험'에 의존하던 농가에 변화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과학기술과 동떨어져 있다고 여겼던 농촌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지난 3월 미국에서 열린 '에너지 혁신 서밋 테크놀로지 쇼케이스'에서는 작물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이삭의 크기나 잎의 면적 등을 측정하는 로봇이 공개됐다. 마치 장갑차를 축소시켜 놓은 듯한 이 로봇의 이름은 '테라센티아.' 미국 일리노이대 과학자들로 구성된 벤처기업 '어스센스'가 만든 이 로봇은 길이가 33cm에 불과하고 무게는 10kg 안팎이다.
테라센티아는 머신러닝 기능을 탑재해 스스로 공부한 뒤 사용자가 원하는 데이터를 송신하는 로봇이다. 잎의 크기를 측정해 작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 열매는 잘 여물었는지 등을 확인한 뒤 사용자에게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연구진은 테라센티아가 3년 이내 5000달러 안팎의 가격으로 농장에 보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독일 프라운호퍼연구회 연구진은 부족한 농장 인력을 보충하고자 오이 피클을 만들기 위한 오이 재배 로봇을 개발해 테스트하고 있다. 이 로봇은 두 개의 팔을 갖고 있는데 카메라 센서가 오이를 식별한 뒤 부서지지 않게 집어 수확한다. 프라운호퍼연구회가 밝힌 오이 인식 성공률은 95%로 연구진은 향후 잘 익은 오이만을 골라내는 기술까지 탑재한 뒤 상용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첨단 기술을 농업에 도입해 자동으로 작물의 생육 환경을 관리하고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농장을 '스마트팜'이라고 한다. 스마트팜은 2050년 세계 인구가 100억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식량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대안으로 기대 받고 있다.
◇스마트팜은 첨단 나노 기술과 정보통신 기술의 복합체
앞서 소개한 대로 로봇 회사를 비롯해 스마트팜 컨설팅 기업은 앞다퉈 비닐하우스나 가축 농가 등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들을 내놓고 있다. 필자가 2년 전 네덜란드의 농가를 방문했을 때다. 축구장 12개를 이어 붙인 규모의 온실에서 일하는 사람은 50여명에 불과했다. 곳곳에 설치된 센서가 온실 내 기온과 습도 등을 실시간으로 측정해 중앙관제실로 전달하고, 작물 사이로 기다랗게 놓인 파이프관이 물과 영양소를 작물 생장에 맞게 제공했다.
토양 산성도와 수분 역시 작은 태블릿PC 화면에서 바로 확인이 가능했다. 손가락 터치 한 번으로 실내 환경 변화 세팅이 가능한 환경이다. 이곳에서는 1제곱미터당 한국보다 3~4kg이 많은 파프리카가 생산되며 수확은 무인자동차가, 선별 작업은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해결된다.
SF영화를 방불케 하는 기술 개발도 진행 중이다. 네덜란드 온실 자동화 대표 기업으로 꼽히는 프리바는 토마토 농장에서 불필요한 가지를 제거하는 로봇 '콤파노'를 상용화한 데 이어, 토마토와 물고기가 함께 생활하는 온실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물고기 배설물이 토마토에 영양분을 제공하고, 따뜻한 물에서 물고기를 양식해 함께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첨단 기술에는 나노기술이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나 센서, 무인자동차를 이루는 핵심 소재인 반도체 등은 고도로 미세한 공정을 거친다. 그래야만 복잡한 상황에 대처하는 정보처리 속도와 학습 능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스마트팜 구축에는 많은 에너지와 비용이 든다. 만약 스마트팜을 가동하면서 드는 전기 및 기타 요금이 수익을 훨씬 상회한다면 누구도 스마트팜을 도입하지 않을 것이다. 초소형, 저전력 반도체를 만드는 나노기술은 바로 이런 약점을 해결할 수 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 농가 역시 스마트팜 적용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역시 스마트팜 중요성을 깨닫고 간단한 센서와 자동화 기술이 도입된 스마트팜을 농가에 적용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영세한 농가가 많고 농작지가 크지 않아 보급률은 낮은 편이다.
수년 전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을 비롯해 서울대 등 한국의 많은 연구기관도 스마트팜 기술을 개발해 농가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KIST는 이미 강원도 딸기 농가에 센서를 적용한 스마트팜 기술을 도입했으며, 스마트폰으로 작물의 사진을 찍어 생육을 관리하는 기술 또한 개발하고 있다. KIST의 기술을 실제 도입한 농가의 주인은 "첫해 작물 생산량은 소위 '평타'를 쳤다"며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첫해에 다른 농가와 비슷한 수준의 생산량을 기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팜 덕분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최근 이정훈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연구진은 반도체 가공에 쓰이는 나노기술을 이용해 토마토 생육 관리 기술을 개발했다. 이 교수는 머리카락 두께보다 얇은 수 마이크로미터의 센서를 개발해 이를 토마토 줄기에 꽂아 토마토의 물리적, 화학적 상태를 측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센서를 사용하면 작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렇게 재배한 토마토 70kg 가운데 30kg을 관악푸드마켓을 통해 이웃 15명에게 전달했다. 연구진은 향후 배추, 상추, 사과 등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간다는 계획이다.
농가가 변하고 있다. 도심과는 동떨어진 아날로그의 방식은 조금씩 희미해지고 사물인터넷, 무인자동차 등으로 대변되는 기술이 새롭게 농가에 자리 잡고 있다. 센서와 로봇, ICT 등 나노기술을 통해 활성화 되고 있는 스마트팜이 자리 잡게 되면, 수년 뒤에는 '농활' 개념이 농촌 봉사활동에서 첨단기술을 엿보기 위한 견학으로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글: 원호섭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