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은 우리나라가 세계적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1994년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 기본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통신 산업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앞선 유·무선 통신 기술은 인터넷 산업을 비롯한 다른 ICT 산업의 동반성장 효과를 가져왔고 경제 성장을 견인했다. 정보화 혁명을 통해 삶은 편리해졌고 일자리도 늘어났다. 통신사업자 투자는 소재 부품을 비롯해 스마트폰, 소프트웨어(SW), 콘텐츠 등 전후방 산업 마중물이 됐다.
산업간 융합 속도가 빨라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통신 중요성이 갈수록 커질 게 자명하다. 하지만, 통신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규제 때문이다.
◇축소되는 통신 시장
통신 산업이 흔들리는 것은 통신 3사 매출과 영업이익, 가입자당평균수익(ARPU)에서 확인할 수 있다. 통신사 무선부문 매출과 영업이익은 정체 또는 감소하고 있다. 시장 포화로 성장 한계에 직면했고, 통신비 절감을 위한 정부 정책이 수익에 악영향을 미쳤다.
올해 1분기 SK텔레콤 매출은 2조9885억원으로 수년 만에 2조원대로 떨어졌다. 영업이익 역시 3693억원으로 4000억원대인 예년보다 줄었다.
ARPU 감소세도 심각하다. 2016년 1분기 3만5959원이던 SK텔레콤 ARPU는 올해 2분기 3만2289원으로 감소했다. 한 가입자에게 한달간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3670원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2500만 가입자로 확대하면 매달 918억원에 달한다.
다른 통신사 상황도 다르지 않다. KT와 LG유플러스 역시 성장 정체에 고민하고 있다. LG유플러스가 수익 면에서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과거와 같은 성장세를 찾아보기 어렵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지난해 매출이 3년 만에 증가세로 전환됐지만 이는 이동통신이 아니라 미디어 등 다른 사업 성장 덕분”이라면서 “올해 1분기 영업이익과 매출 감소 추세를 감안하면 앞으로도 성장 정체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며 ICT 발전과 경제성장을 이끌던 통신 사업은 이처럼 성장 한계에 봉착해 있다. 사물인터넷(IoT)을 비롯해 신규 비즈니스 모델로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다. 새로운 서비스를 위한 투자가 어렵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각종 규제로 인한 시장 불확실성 때문이다.
◇지나친 규제, 신규 투자 발목
KT는 2분기 실적발표에서 지난해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10.8%, 매출 0.6%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선택약정할인율 상승에 직격탄이 됐다.
윤경근 KT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하반기 기초연금수령자에 대한 요금 감면이 추가 시행되면 무선 매출에 부담이 될 전망이며 ARPU 하락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선택약정할인은 대표적인 통신비 인하 규제다.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도입 시 중고폰이나 저렴한 직구폰 사용을 늘려 가계통신비 절감을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궁극적으로는 자급제 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선택약정할인 제도를 인위적으로 통신비를 인하하는 도구로 전용했다. 현 정부출범 이후 통신비 인하 정책 중 하나로 선택약정할인율을 20%에서 25%로 늘렸다.
이뿐만 아니다. 어르신·저소득층 월 1만1000원 추가 감면은 국민 11.3%에게 기본료 폐지 수준 혜택을 제공했다.
정기국회에서는 보편요금제 도입이 본격 논의된다. 지난해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2만원대에 데이터 1GB를 제공하는 보편요금제 도입 시 2570만명에게 연간 최대 2조2000억원의 통신비 절감 효과를 예상했다.
통신비 절감은 이통사 수익 하락과 동의어다. 통신사는 수익 하락에 대한 우려와 불확실성 때문에 선뜻 신규 투자 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5세대(5G) 이동통신에 대한 신규 투자 규모를 가늠하기가 어려운 상태다.
◇통신산업 변화 인정해야
규제를 통한 통신비 인하 정책은 매년 정권이 바뀌거나 포퓰리즘이 필요할 때마다 나오는 단골 소재다. 통신 산업에는 통신비뿐만 아니라 오래 전부터 다양한 규제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기통신사업법이 규정하는 기간통신사업 허가, 외국 정부 또는 외국인의 주식소유 제한, 사업의 겸업, 사업의 양수 및 법인의 합병 등이 대표적인 통신 규제다. 통신사는 이같은 규제는 대부분 수익에 직결되며 사업에 제한이 따를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통신사 정책담당 전문가는 “전기통신사업법은 과거 통신사가 통신 사업만을 할 때 제정된 법이라 시장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면서 “방송통신 융합 등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서는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통 통신시장이 포화됐기 때문에 통신사가 다른 분야에서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어야만 신규 투자를 할 수 있고 새로운 일감도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신규제가 완화될 때 과거와 같은 신규 투자가 발생하고 다른 산업이 동반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다.
공정 경쟁과 시장 질서를 유지하고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적절한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5G,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등 통신사가 신규 비즈니스를 발굴해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기존 규제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표〉통신 산업 주요 규제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