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바이오경제 시대로 빠르게 재편한다. 제조업 등 국가 기간산업 부진, 고령화에 따른 국가 의료비 지출 확대 문제를 해소하는데 '바이오'가 대안이다. 4차 산업혁명 환경에서 정보통신기술(ICT)과 접목한 바이오헬스 산업은 미래 세계 경제를 책임질 기대주다. 우리나라 대응은 많은 우려를 낳는다. 연구개발(R&D)단계에서 산업화로 발전시킬 모멘텀이 없다. 규제 속에 갇힌 우리나라 바이오헬스는 골든타임을 놓칠 위기에 처했다.
◇ICT 만난 바이오, 규제 가시 밭
전통 바이오산업은 ICT와 융합하면서 첨단산업으로 진화했다. 신약개발은 물론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맞춤형 치료 등 주목받는 바이오 영역 모두 ICT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은 국가 차원에서 투자를 강화하지만, 우리는 규제에 갇혀 R&D 단계에만 머무른다.
병원 보유한 환자정보는 강력한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등으로 상업 활용은 원천 차단된다. 연구 목적 역시 병원별 임상시험 승인을 받아야 해 다기관 공동 연구가 어렵다. 환자동의, 비식별 조치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점도 연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데이터 기반 건강관리, 진료지원 솔루션 개발이 활성화되지 못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바이오 빅데이터는 바이오산업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 융복합하는 매개”라면서 “바이오 빅데이터 규제 개선뿐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목적과 활용 방향 설정, 거버넌스 구축 등 해결해야 할 요소가 많다”고 말했다.
정밀의료 핵심인 '유전체 분석'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민간 유전체 분석 기술은 세계 수준이다. 하지만 생명윤리법 상 환자 진단, 치료 등에 활용하기 위해 의료기관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2016년 법을 개정해 민간 기업도 병원을 거치지 않고 직접 일반인 유전체 분석이 가능해 졌다. 대신 피부, 미용, 혈당, 탈모 등 건강관리 영역에 국한했다. 질병 진단, 치료, 예방 영역에 뛰어난 민간 기술 진입을 막으면서 시장 육성 기회를 놓치고 있다.
문제는 바이오경제 흐름이 플랫폼 사업으로 향하면서 파생 산업 육성까지 가로 막는다는 점이다. 바이오 빅데이터 활용이 제한되면서 데이터 기반 바이오 비즈니스도 크지 못한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진단지원 솔루션을 포함해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유전체 분석 역시 결과물을 활용해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피트니스 영역 동반 성장이 기대되지만 시장 조성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해묵은 원격진료, 떠오르는 회계 이슈
십 수년째 논란이 이어지는 원격진료는 바이오헬스 분야 대표적 규제다.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 허용은 여전히 의사 단체 반대로 진전이 없다. 정부는 시범사업으로 진행했던 제한적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 허용을 검토한다. 격오지, 도서·산간 지역, 교정 시설 등에 제한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법적 검토를 한다.
보건복지부는 여전히 대면진료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한 발짝도 못나가는 원격진료 허용은 바이오헬스 산업뿐 아니라 환자 불편까지 가중한다. 원격진료는 단순히 의사·환자 간 의료행위를 넘어 파생되는 서비스, 솔루션 산업 의미가 크다.
의료행위를 도와주는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는 세계에서 각광 받는다. 부정맥, 당뇨 등 여러 만성질환을 관리하고 위험을 모니터링 해 의사에게 알려주는 솔루션은 원격진료 금지 때문에 국내 판매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개발됐지만, 해외 사업을 전개한다. 기업은 국내 레퍼런스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 환자는 좋은 솔루션을 이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모두 불편을 겪는다.
이병환 스카이랩스 대표는 “웨어러블 기기로 환자 심장 상태를 모니터링해 부정맥을 예측, 진단 지원하는 솔루션을 개발했지만, 해외 사업을 우선 고려한다”면서 “국내에서는 원격진료 이슈가 있어 사업이 어렵다고 판단, 미국과 유럽 의료기기 인증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최근 바이오 업계를 뒤흔든 회계 이슈는 산업을 더욱 위축시킨다. R&D 비용을 무형자산으로 처리해 온 바이오 업계에 금융당국이 철퇴를 놓으면서 업계가 잔뜩 얼어붙었다. 금융당국은 차바이오텍, 셀트리온 등 10여 개 바이오기업 감리를 진행한다. R&D 비용을 자산으로 처리해 영업이익을 부풀렸다는 의혹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불법 회계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바이오업계 거품 논란은 물론 도덕성 시비까지 제기됐다.
규제에 발목 잡힌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시장 육성 의지다. 바이오업계는 정부가 바이오산업을 육성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상 최대 벤처 투자금이 바이오시장에 흘러오고, 역대 최대 바이오 벤처가 창업하는 등 시장 성장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정부의 규제개선, 투자 등이 뒤따를 경우 성장 속도는 배가 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1년을 돌이켜 보면 규제 개선 결과물은 낙제에 가깝다.
이 부회장은 “최근 바이오산업은 뚜렷한 성장곡선에도 규제, 회계 이슈 등으로 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이 꾸준히 발생한다”면서 “정부가 시장 불안을 해소할 신호를 제시해 줘야 하지만 육성의지를 확인하기 어려워 아쉽다”고 지적했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