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반도체 논란에 메모리 파운드리 생태계 조성론 부상

Photo Image

제주반도체가 대만 파운드리 회사 UMC와 32나노 D램 설계 용역 계약을 맺은 것을 놓고 '기술 유출 조력자' 논란이 불거지자 국내 팹리스와 학계에서 '한국 메모리 파운드리(위탁생산)'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제주반도체는 국가 연구개발(R&D) 자금을 받아 여러 기술을 개발한 바 있다. <본지 8월 17일자 2면 참조>

정항근 반도체공학회장은 27일 “그동안 국내 메모리 대기업은 노후 생산 시설을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로 전환해 왔다. 이러한 시설을 국내 중소 팹리스가 메모리를 생산할 수 있도록 바꿔 준다면 한국 메모리 산업 전반으로 경쟁력이 올라갈 것”이라면서 “이와 함께 신생 메모리 팹리스 창업을 유도하고 고경력 메모리 설계 인재의 중국 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업계에 따르면 2000년대 초 10여개에 이르던 메모리 반도체 팹리스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 피델릭스는 중국 동심반도체에 인수됐으며, 제주반도체 역시 UMC가 전략적 투자자로 상당한 양의 지분을 확보한 상태다. 제주반도체는 지난 2015년 피델릭스와 마찬가지로 중국에 회사를 팔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현재는 아토솔루션, 넷솔, 제주반도체, 피델릭스 등이 메모리 팹리스 사업을 펼치고 있다. 국내 메모리 팹리스 산업이 붕괴된 것은 중국, 대만 등 해외 경쟁사보다 원가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내에 메모리 파운드리 서비스가 없어 대만 등 해외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구조가 요인으로 꼽힌다.

윤진득 넷솔 대표는 “삼성이나 SK하이닉스가 다루지 않는 저가 메모리 시장도 상당히 크다”면서 “대만 기업이 이 시장을 거의 독식하고 있는 가운데 다수의 국내 팹리스가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마땅한 메모리 파운드리가 없어 쉽지 않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제주반도체의 김세중 전무도 “국내 파운드리 공장이 없어서 대만과 협업하고 있지만 생산 용량을 더 확보하지 못해 고통받고 있다”면서 “용량 확보가 더 어렵다면 장기로는 중국 파운드리에 생산을 맡길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각에선 제주반도체가 주요 생산처인 UMC에 목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조력자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좌교수는 “저가 메모리는 국내 대기업이 발을 담그고 있지 않은 시장”이라면서 “중소기업이 이 시장에 안착할 수 있다면 국내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더욱 굳건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출신 낸드플래시 컨트롤러 벤처기업 T사 대표 역시 “지금 같은 메모리 공급 부족 상황에선 '우리 쓸 생산 캐파도 없다'는 것이 대기업 입장일 것”이라면서 “그러나 기술자 이직 문제 등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는 파운드리를 오픈해 주는 것이 이득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메모리 대기업은 이 같은 목소리에 즉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쉽지 않다'는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사업성이 있다면 왜 안 했겠는가. 우리는 자선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지금 천문학 규모 비용을 들여서 기존 생산 용량을 유지하는 것도 힘겨운데 외부에 파운드리를 오픈한다는 것은 더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행여 이 같은 목소리가 정책으로 반영된다면 또 한 번 대기업 팔목을 비틀어서 자원을 소비하게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