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 센서를 개발한 중소기업 A사는 최근 지방자치단체 터널 구축 소식을 듣고 사업 여부를 타진했지만 참여 자체가 불가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국토교통부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에 따라 사고 검지 설비를 '영상' 방식만 특정했기 때문이다. A사는 신기술 인증(NET)까지 받았지만 품목 자체가 사업에 해당되지 않으니 소용이 없었다. 정부의 '열거식' 규정이 신기술 확장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열거식 규정은 정부가 물품 공급 비리를 막고, 제품을 안정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옛 기술에 머물게 하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열거식 규정을 최소화하고 기능 위주로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A사는 레이더식 돌발상황검지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러나 해당 지자체가 도로 방재 시설을 영상 방식으로 한정한 탓에 사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국토교통부 관리 지침이 터널 내 입·출구부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위험물 누출, 화재 사고를 감지하는 설비를 '영상 유고 감지설비'로 권고했기 때문이다.
A사는 “영상유고감지설비는 CCTV를 100m 간격으로 설치해야 하고, 터널 조명 변화 및 분진 등 환경에 취약해 오감지 가능성이 농후하다”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장치로 레이더 방식을 개발했지만 발주 품목 자체에도 들어가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강제가 아닌 권고 사항”이라면서 “지금 지침으로도 신기술 채택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A사는 공공시장에서는 중앙정부 권고가 사실상 '강제 사항'으로 여겨져 우선 적용된다고 항변했다. 사업을 발주하는 일선 기관은 정부 권고를 따를 수밖에 없다.
NET 지침은 신기술 확산을 위해 장관 승인으로 시장 진입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 놨다. 그러나 소규모 사업 검토까지 장관에게 요청하기는 어렵다. 중소기업이 신기술을 개발하고 정부 인증을 받아도 공공 시장에서는 대우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드론·첨단자동차 등도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기준'에 들어가지 못해 국내 개발이 더딘 형편이다. 인증을 받아야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데 인증 기준이 열거식인 탓이다. 해당 사항이 없어 인증조차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드론 주파수 통신장비, 배달로봇, 초소형 전기차 등이다.
업계 관계자는 “특정 품목이 개발되면 하나하나 추가하는 열거식 규제로는 사회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면서 “신기술이 적극 채용될 수 있도록 장기 네거티브 방식으로 기술 관련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보경 정책 전문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