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수출국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5월 한국의 총 수출액에서 반도체가 차지한 비중은 역대 최고인 20.3%였다. 자동차, 조선 같은 기존 주력 산업 수출이 대부분 감소하는 상황에서 오직 메모리 반도체만이 우리 경제를 이끌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 커다란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 바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다. 2017년 중국의 반도체 수입 규모는 약 2600억달러에 달했다. 엄청난 규모다. 중국의 2016년 반도체 자급률은 약 13.5% 수준에 불과했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로 약 250조원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중국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올 하반기부터 후베이성 우한에서 3D 낸드플래시 메모리 양산을 시작하며, 다른 중국 기업도 비슷한 시기에 D램을 양산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중국 정부가 디스플레이 산업을 7대 신성장 산업으로 지목, 집중 육성한 지 10년 만에 3%도 안 되던 점유율이 지난해 24.8%로 껑충 뛰어올랐다. 끝내 한국을 제쳤다. 메모리 분야 역시 이렇게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물리치고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바로 한국형 생태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사물인터넷(IoT)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저용량, 다품종 D램과 낸드플래시로 대표되는 저사양 메모리 시장이 지속 확대되고 있다. 이들 저사양 메모리 시장은 매출 규모가 작아서 한국 대기업들은 외면한다. 이 분야 강자는 대만이다. 대만 팹리스 기업은 대만 정부와 대만 파운드리 기업 지원을 통해 세계 저사양 메모리 시장의 97%를 장악하고 있다.
국내 저사양 메모리 반도체 팹리스 기업은 국내에서 메모리를 생산하지 못하고 파워칩, 윈본드 같은 대만의 메모리 파운드리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설계 기술이 우위에 있어도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점유율을 높이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대만의 메모리 팹리스와 파운드리 기업이 대만 정부의 지원 속에 저사양 메모리 시장을 장악하는 동안 한국은 '국내 메모리 파운드리' 부재로 2000년대 초 10여개에 이르던 메모리 팹리스가 거의 사라졌다.
현재 ESMT, AP메모리테크놀로지, 이트론, ISSI 등 대만 팹리스 업체가 차지하고 있는 약 10조원 규모 저사양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이제 곧 중국이 장악하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중국은 팹리스 기업도 많고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메모리 파운드리도 다수 생겨나고 있다. 또 메모리 반도체 시장 진입을 위해 한국 메모리 반도체 팹리스 기업 인수에 몰두하고 있는 등 한국 메모리 반도체 설계, 제조 인력의 중국 유출도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동안 국내 메모리 대기업은 노후화된 메모리 생산 시설을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로 전환해 왔다. 이 팹을 메모리 파운드리로 제공한다면 국내 팹리스의 경쟁력이 올라가고 다수의 신생 메모리 팹리스가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고경력 인재가 중국으로 이직,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한국형 메모리 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 성장 선순환 모델을 구축한다면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 추격을 지연시키고 반도체 산업이 다음 세대에도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정항근 반도체공학회장 hgjeong@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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