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대법원은 2005~2011년 2세대(G), 3G 이동통신 원가 정보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소송을 제기한 시민단체는 조만간 롱텀에벌루션(LTE) 원가 자료까지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주장은 이통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소비자는 그에 대한 원가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목적은 이통 원가 내역 파악보다 원가 보상 비율이 100%를 넘을 경우 그만큼의 요금 인하 주장에 있다.
이통서비스 원가 정보 공개는 지나친 감이 있지만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위헌은 아니다. 그러나 원가보상률을 근거로 통신 요금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우리 경제 이념에도 맞지 않고 실효성도 의심되는 무리한 정책이다.
우선 시장경쟁 원칙에 맞지 않는다. 요금을 정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세계적으로 통신요금은 민간 사업자 간 경쟁에 의해 시장에서 결정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KT를 민영화했으며, 3개 민간 사업자가 경쟁하는 시장 체제가 갖춰졌다. 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 요금은 정부 인가를 받지만 이는 정부가 요금을 결정하기 위함이 아니라 SK텔레콤이 지배력을 남용, 약탈적 요금 설정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즉 공정 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따라서 원가보상률 기준으로 요금을 결정한다면 자율경쟁에 의해 서비스 개선, 요금 인하, 망투자 등을 촉진하려는 민영화와 경쟁체제 도입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다. 아울러 사업자 간 원가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어느 사업자 원가보상률을 기준으로 요금을 인하해야 할 것인가도 문제가 된다. 만일 원가 보상 비율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SK텔레콤 원가 보상 비율 기준으로 요금 인하를 하게 된다면 KT나 LG유플러스는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 경우 이통 사업은 SK텔레콤 독점 체제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사업자 원가 절감 인센티브도 위축시킨다. 민간 기업은 시장에서 차별화 전략과 원가 우위 전략을 통해 기업 경영을 하며, 통신사업자도 마찬가지다. 만약 원가 보상 비율 100% 기준으로 통신요금을 설정한다면 통신사업자는 경영 혁신 등을 통해 원가를 줄일 필요성이 아예 없어진다.
사업자는 과도한 임금 인상, 비효율 비용 지출 등 방만한 경영으로 원가를 부풀릴 유인을 가지게 되고, 이렇게 늘어난 비용은 결국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즉 원가 보상 비율에 근거한 요금 책정은 기업 비효율을 용인해 궁극으로는 요금을 인상하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네트워크 투자를 위축시킨다. 만일 원가 보상 비율 기준으로 요금을 책정하면 통신사업자 미래 투자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특히 이제 본격 투자에 들어가야 할 5G는 원가 보상 비율을 근거로 요금을 산정하게 되면 이미 투자가 완료된 3G나 LTE에 비해 초기 요금이 매우 비싸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서 통신사업자는 고객 확보 어려움과 투자 재원 부족으로 5G 네트워크 투자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가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지금까지 통신사업자 간 치열한 네트워크 구축 경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네트워크별 원가 보상 비율에 따라 통신요금이 책정된다면 새로운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 자명하고, 우리나라 ICT 경쟁력 또한 약화될 것이다.
원가 보상 비율 기반 요금수준 논의는 추진해서는 안 되는 정책이다. 원가 산정 관련 정보 등을 정부에서 취합하는 것은 원래 공정경쟁 여건 조성과 안정적 서비스 제공을 위한 것이지 요금 규제를 위한 것이 아니다. 자율시장경제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규제 기관에 시장 환경에 대한 판단 자료를 제공한 것으로, 그 자료를 시장경제를 무너뜨리는 방식의 요금 규제에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김연학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MOT) 교수 smart660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