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맥주 종량세 도입이 사실상 유보된 가운데 주류 업계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으나 '4캔 1만원'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드는 작업이 무산됐다는 것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30일 세제발전심의원회를 열어 최근 '재정개혁특별위원회'의 권고사항을 토대로 세법 개정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관심을 모았던 현재 종가세 체제인 맥주 세금을 종량세로 전환하는 안은 끝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입맥주 과세표준에는 국산 맥주 과세표준에 들어있는 국내 이윤이나 판매관리비 등이 포함되지 않아 상대적으로 세금이 적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하지만 정부는 싼값에 수입맥주를 즐기려는 소비자 편익을 강조하는 것과 동시에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 종량세 개편 논의를 중단했다. 앞서 맥주 세금부과 방식은 ℓ당 일정액으로 내게 하는 종량세로 개편이 유력했지만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맥주 세제 전환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방향이 급변했다.
김 부총리는 “맥주 종량세 전환은 조세 형평 측면과 함께 소비자 후생 측면도 모두 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세 형평성도 중요하지만 고단한 하루를 보낸 뒤 맥주로 목을 축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부담이 커질 수 있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의 이해는 다르다. 맥주업계 한 관계자는 “나라 경제를 책임지는 부총리가 국내 기업이 받는 역차별은 무시한 채 오히려 수입맥주 판매를 독려하고 있다”며 “소비자 후생을 거론하며 여론에 백기를 든 형국”이라고 말했다.
수제맥주 업계와 맥주 업체 노동조합도 비판에 가세했다. 한국수제맥주협회는 “'4캔 1만원'이 사라진다는 것과 증세 프레임으로 흘러가며 소비자들 오해가 생기고 종량세 개정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며 “본질에서 벗어난 소모적인 논쟁을 즉시 멈추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과세제도 및 소비자 효익이라는 관점에 집중해 종량세가 도입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협회도 “'국산맥주 맛없어서 수입맥주 먹는다'고 말하며 품질 낮은 맥주를 만들도록 유인하고 품질 좋은 맥주를 비싸게 판매하게 만드는 현재 구조를 변경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며 “종량세를 도입하면 경쟁을 통해 선택권이 늘어 가격이 저렴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등의 국내 맥주제조회사 노동조합 일동도 25일 성명서를 내고 “국내 맥주만의 특혜를 바라지 않지만 최소한 동등한 룰 속에서 국산맥주와 수입맥주간의 차별 없는 소비자 선택권이 부여되기를 요구한다”며 “노동조합은 하루속히 맥주 과세체계를 종량세로 개편해 노동자의 생존권과 일자리를 보호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종량세 개편이 좌초되면 위스키에 이어 맥주 제품이 한국을 떠날 것은 시간 문제”라며 “국내 맥주공장에 취업한 5000여 노동자와 1000여개의 하청업체 수만의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고 생존기반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노조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산업을 지키기 위해 무역전쟁도 불사하는 마당에 대한민국정부는 국내 맥주산업이 붕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차별 정책을 수수방관하고 있다”며 “정부가 주세개편에 계속 미온적 태도를 보일 경우 노동자들은 생존권 확보 차원에서 대정부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주현 유통 전문기자 jhjh13@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