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서비스 사업자 '특별채널 온라인 약식 정책' 문서에는 번호이동과 기기변경 등 가입유형에 따른 차별을 유도하는 내용이 분명했다.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단통법) 위반 소지가 충분했다.
단 한 차례도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통 시장을 혼탁하게 만드는 배후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어떤 내용이 담겼나
문서는 이통사와 사전에 특수 계약을 체결한 온라인 대리점에만 배포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일반 오프라인 매장에 LG G7 씽큐 장려금을 20만원 지급하는 반면에 같은 시간 온라인 대리점에는 50만~60만원을 지급했다. 공시 지원금을 제외하고 온라인 대리점과 오프라인 유통점에서 소비자에 제공하는 혜택이 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핵심은 '번호이동(MNP) 목표 정책'이다. 이통사는 온라인 대리점 규모에 따라 각각 다른 번호이동 목표를 할당했다. 규모가 큰 대리점은 한 달 번호이동 목표를 2200건 이상으로 제시, 적은 매장은 100건으로 제한하는 등 치밀했다.
기본 장려금 단가는 기기변경보다 번호이동과 신규 가입에 훨씬 높게 책정, 차별적 가입을 유도했다. 번호이동 목표는 특정 기간에 최소 600건 이상으로 설정했다.
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이통사가 지급하는 금액은 달라진다.
번호이동 기본 지급 단가가 건당 1만원, 목표 달성 시 1만원으로 책정됐을 때 700건을 목표 로 설정한 온라인 대리점이 699건일 경우 이통사로부터 699만원을 받는다. 반면에 700건을 달성하면 1400만원을 받는다. 할당된 목표를 채우기 위해 번호이동 유치를 할 수밖에 없고 이통사로부터 받을 장려금과 격려금으로 가입자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일부 이통사는 '미달 정책'도 적용했다. '최소 그레이드(번호이동 실적) 600건 미달일 경우 지급 없음'이라는 문구를 적시했다. 최소 600건 번호이동을 채워야 미리 약속된 금액이 지급되는 방식이다. 599건 번호이동 건수를 올린 대리점은 기본 지급 수당도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고가요금제 유지 정책'도 추가했다. 비율에 따라 건당 3300~1만1000원을 지급했다. 600명 번호이동 가입자 중 6만원대 이상 고가요금제를 450명 이상 가입시켰을 때 495만원이 추가 상여금으로 지급된다. 고가요금제 가입 비율이 올라갈수록 건당 금액이 올라간다. 전체의 55%인 경우에는 건당 3300원을 지급하지만 55% 이상 채우면 건당 1만1000원으로 샹향된다.
'기변 차감 정책'에 대한 내용도 문서에 담겼다. 아이폰6 32GB를 한 대 판매할 경우 번호이동 가입자로 유치하면 기본 27만원 장려금에 추가 지원 정책이 붙지만 기기변경으로 가입하면 오히려 4만원을 이통사에 돌려줘야 하는 식이다. 기기변경 가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불합리한 정책이다. 대놓고 번호이동 강요하는 고전적인 방식이다.
이통사가 문서에 담은 내용을 종합하면 온라인 대리점이 기기변경 가입자를 유치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고 번호이동과 고가요금제 가입자를 유치할 때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알고사·빠싹 등 온라인에서 '번호이동/699요금제 6개월 이상 의무사용' 조건이 붙어야만 휴대폰을 싸게 살 수 있었던 근본 이유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휴대폰 판매점 관계자는 “온라인 약식 정책을 받는 대리점과 하부 판매점이 가입자를 많이 유치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이통사별로 가입자가 순증 또는 감소했을 때 표시나지 않게 개통하기 때문에 과열 지표로 나타나지 않은 교묘한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법 위반 사항은
이통사는 전국 대리점에 동일한 온라인 약식 정책서를 전달한 것이 아닌, 특수 관계에 있는 일부 대리점에만 전달했다. 믿고 거래할 수 있는 대리점을 선점해 관계를 유지해온 것이다.
단통법 제9조 3항은 이통사가 대리점과 계약을 체결할 때 이용자에게 차별적인 지원금을 지급하도록 지시·강요·요구·유도하는 행위를 하거나 특정 부가서비스·요금제를 부당하게 가입하도록 권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법 위반 이통사에 매출액 100분의 3 이하에 해당하는 금액을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이통사는 단통법 12조 1항 위반 소지도 충분하다. 법에는 이통사가 유통점에 지급한 장려금 규모 및 재원 등을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만약 이통사가 온라인 약식 정책서 내용을 그대로 제출했다면 방통위는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방관했다는 의미다.
단통법 5조 1항은 이통사와 대리점·판매점이 이용자와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는 데 있어 별도 지원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특정 요금제·부가서비스 등 일정기간 사용 의무를 부과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고가요금제 유지 정책을 요구한 이통사가 법 위반 조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여지다.
홍기성 한국이동통신판매점협회 회장은 “온라인 약식 정책을 근절하고 유통점 간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면 방통위 사실조사가 불가피하더라도 전국 판매점이 감수해야 할 몫”이라며 “정직하게 휴대폰을 판매하고 가입자를 유치하는 대리점·판매점이 온라인 약식 정책으로 인해 더 이상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