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선 1년 넘는 허가 절차에 '포기'...규정·가이드라인조차 없어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의약품이 국내에서는 판매조차 못한다. 세계 유일 나노 소포체 진단 알고리즘도 1년 넘게 허가 절차에 발목을 잡혔다. 인·허가 규정은 물론 가이드라인도 없다. 정부의 안일한 대응으로 기술력을 갖추고도 바이오 신시장 선점을 놓칠 위기에 처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국산 마이크로바이옴 기업 코엔바이오, MD헬스케어 등이 개발한 건강기능식품과 진단 서비스가 인·허가 규정 미비로 출시조차 못하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우리 몸과 주변을 둘러싼 환경에 공존하고 있는 미생물 유전 정보다. 몸 속 장내를 비롯해 피부·구강·생식기 등에 존재하는 미생물은 대사질환, 치매, 암, 면역질환 등을 치료하는 데 활용된다. 미국 등 선진국은 현대의학 한계를 해소할 기대주로 판단, 대규모 투자를 한다. 2012~2016년 마이크로바이옴 기업 대상 투자금액 성장률은 458.5%에 이른다. 우리나라도 2010년대부터 연구개발(R&D)에 착수했다. 병원과 기업 중심으로 미생물 균총 확보, 질병과 연관성 입증 등에 집중했다. 건강기능식품, 분석 서비스 등이 개발 완료됐다. 신약 개발도 활발하다.
문제는 국내 관련 인·허가 규정은커녕 가이드라인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코엔바이오는 지난해 FDA로부터 김치 유산균을 이용한 건강음료를 일반의약품(OTC)으로 허가 받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건강기능식품 판매를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허가를 신청했지만 복잡한 절차 때문에 포기했다. 미국과 달리 제품에 들어간 수십여 종의 미생물 독성 검사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코엔바이오 관계자는 “FDA는 제품에 들어간 균주를 확인하고, 해당 균주에 독성이 없으면 일반의약품 승인을 한다”면서 “우리나라 식약처는 개별 균주 대상 모든 독성 검사를 요구한다. 그러나 균주 1개에 1억5000만원이 들고, 1년 가까이 실험을 해야 하기 때문에 허가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MD헬스케어는 세계 최초로 미생물이 뿜어내는 나노소포로 질병 진단 기술을 확보했다. 지난해 이 기술을 활용해 주요 질병을 진단하는 알고리즘 의료기기 허가를 신청했다.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인·허가 과정을 넘어서지 못했다.
MD헬스케어 관계자는 “허가 진행이 1년 이상 지체된 것은 문제”라면서 “인·허가 가이드라인이 없어 그때그때 요구 사항을 전달하다 보니 지체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미생물 치료제제(LMP)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과학기술정책위원회도 R&D 성과가 의료 현장에 쓰이도록 제도 걸림돌 발굴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우리나라는 마이크로바이옴 식품, 서비스, 신약 등 인·허가 규정이 전무한 실정이다. 인·허가 방향성을 제시할 가이드라인도 없다.
발효식품 강국인 우리나라가 마이크로바이옴 시장을 주도할 기회를 식약처가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바이오 산업 문제인 비합리한 규제, 보수 형태의 행정 업무 관행 등이 원인이다. 업계 관계자는 “상업화를 선제 지원할 인·허가 가이드라인과 규정을 만들어서 시장과 규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아무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마이크로바이옴 제품·서비스 범위(자료: KISTEP)>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