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 명상과학연구소가 지날달 21일 문을 열었다. 국내에서 처음이다. 소장은 학승(學僧)이자 선승(禪僧)으로 불리는 미산 스님이 맡았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하버드대학 세계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역임한 명상 전문가다. 현대인을 위한 명상 프로그램인 '하트스마일명상' 창시자다.
미산 스님을 8일 오전 8시 반 서울 상도동 상도선원에서 만났다. 스님은 KAIST 교수 숙소에서 생활한다. 인터뷰 약속시간에 맞춰 아침에 KTX를 타고 서울로 왔다. 서울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법회 참석을 위해 온다고 했다. 도심 속 상도선원은 외형은 현대식 4층 건물이지만 법당과 내부 바닥은 마루여서 한옥 전통미가 물씬 풍겼다. 스님이 직접 우려낸 백차(白茶)를 마시며 연구소 운영과 명상과학 이야기를 나눴다.
-연구소에서 스님을 어떻게 부르나.
▲소장라고 부른다. 소장은 종교인의 정체성보다 공동체 일원으로서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장이자 초빙교수다. 과학 공동체 일원으로서 소장 소임에 충실해야 한다.
-거처는 어디인가.
▲KAIST 교수 아파트에서 생활한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6년간 공부할 때 기숙사 생활을 했다. 그래서 공동생활에 익숙하다. 마치 유학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다.(스님은 인터뷰와 다른 일정을 끝내고 저녁에 KAIST 숙소로 내려갔다.)
-어떻게 소장직을 맡게 됐나.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이 우울증과 강박, 스트레스 해소, 자비심을 훈련시켜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이미 과학적으로 성과를 검증했다. 3년 전 현대인에게 적합한 명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전문가와 명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게 하트스마일명상이다. 명상과 과학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장직 제안은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받았다.(플라톤 아카데미가 연구소 재원을 지원한다.)
-앞으로 포부는.
▲거듭 말하지만 스님이 아니라 과학 공동체 일원이다. 우수한 과학자와 지혜를 모아 좋은 명상 프로그램을 만들고 세계화하는 일에 전념할 생각이다. KAIST는 47년간 한국 과학기술발전과 지식정보강국이라는 첫 번째 큰 꿈을 이뤘다. 두 번째 꿈은 글로벌 인재를 양성해 4차 산업혁명시대 리더로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KAIST 3가지 핵심 가치는 △도전 △창의△ 배려다. 이런 가치가 없으면 4차 산업혁명 시대 글로벌 리더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은 연구결과로 승부한다. 지금은 남을 뒤따라가는 연구가 아닌 남이 하지 않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 명상과학을 통해 새롭고 획기적 연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구성원끼리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융복합으로 과학적 명상 프로그램을 개발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글로벌 가치를 창출하는 일에 기여할 수 있어 기쁘다. 앞으로 명상 과학화를 위한 다양한 융합 연구를 수행할 계획이다.
-올해 주요 계획은 무엇인가.
▲연구소를 개소했지만 아직 사업을 확정한 건 없다. 조직이나 구성원, 주요 계획을 마련 중이다. 지금 세부 연구과제를 마련하기 위해 명상과학 리포트를 준비하고 있다. 세계 명상과학 연구 실태를 조사하고 KAIST가 어떤 방향으로 어떤 연구를 할 것인지 세부과제를 마련할 방침이다. 서양에서는 명상에 대해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유수대학인 스탠퍼드나 버클리, 브라운 등이 명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고 하버드대학도 병원과 연계해 명상 연구를 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와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도 명상과학 연구가 활발하다. 주요 계획을 확정한 뒤 인터뷰를 해야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할 수 있는데.(웃음)
-주요 명상 시설은.
▲명상실과 상담실, 감성지능실, 행정실 등을 비롯, 최적화한 명상 환경을 구현하기 위해 명상 교재와 프로그램, 의자나 방석 등도 개발할 계획이다. 일반인들이 불교에서 하는 가부좌가 쉽지 않다. 구체적 명상 프로그램을 마련해 진행하고 지도자 교육도 해야 한다. 앞으로 할 일이 많다.
-외국 명상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 있나.
▲명상은 동양 수행의 정수(精髓)다. 서양 1세대 명상학자가 40년 전부터 명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했다. 우리보다 앞서 현대인 정서에 맞게 재구성한 명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대표적인 게 불교명상법을 이용해 미국 MIT 존 카밧진이 만든 MBSR (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program) 프로그램이다. 그는 분자생물학자다. 처음에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8주간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에서 시작했는 데 탁월한 효과를 거두자 지금은 한국과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으로 퍼졌다. 1970~80년대는 명상 관련 논문을 발표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명상 연구가 활발해 지금은 매년 1200여편 명상 관련 논문이 나온다.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도 나와 있다.
-명상을 하면 어떤 성과를 거두나.
▲명상 효과 연구결과는 많이 나왔다. 일상이 아닌 특수한 방법으로 명상을 하면 몸과 마음이 움직인다. 인간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3개 습관에 물들어 있다. 명상 목적은 풍요로움과 행복함이다. 명상은 몸과 마음을 고유상태로 회복시키는 과정이다. 늘 감사와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스스로 몸과 마음이 따뜻해지고 밝아진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인지과학이나 뇌과학 등 연구를 하려면 명상을 해야 한다. 그러면 한 차원 높은 연구를 할 수 있다. 마음과 몸이 고요하면 편안해진다. 이때 자신을 깊이 배려할 수 있다. 자신을 배려할 수 있는 사람만이 상대를 배려할 수 있다. 명상은 자기 배려로 시작한다. 자기 배려를 위한 구체적 행법(行法)이 명상이다. 도전하다 실패하면 많은 이가 포기한다. 포기하지 않고 창의적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게 명상의 힘이다. 내면에 충실할 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창의적이고 통찰력 있는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
-하트스마일은 어떤 명상 프로그램인가.
▲체화하는 구조로 만들었다. 크게 다섯가지 행법(行法)으로 구성했다. 명상은 집중력 향상과 스트레스 완화, 편안함과 감사함을 느끼게 한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비를 나누는 명상이다. 감사와 사랑 호흡이란 것도 있다. 들숨에 감사, 날숨에 사랑하는 수행이다. 명상은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목표로 만들었다. 운동법도 있다. 매뉴얼도 만들고 국제화도 추진할 계획이다. 주말에 2박 3일 일정으로 종교와 무관하게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지금까지 22회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난관이 닥쳤을 때 어떤 마음으로 극복해야 하나.
▲세상살이에 난관 없는 삶은 없다. 삶은 어려움의 연속이다. 일이 잘 풀린다 싶으면 또 다른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이때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나” 하면서 남 탓이나 자책하지 말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가볍다. 근심과 걱정, 불평을 할 시간에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행동하면 고민 시간도 줄이고 에너지도 낭비하지 않는다. 해결을 위해 행동하면 실마리가 보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그에 상응하는 긍정의 관계를 형성한다. 어려움이 닥쳤을 해결 방식은 간단하다. 긍정 에너지를 사용하면 긍정 조건이 보인다. 이런 게 명상의 지향점이다. 내 경험인데 지난달 연구소 개소를 앞두고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쳤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더니 길에서 우연히 아는 이를 만나 팀을 꾸려 개소식을 잘 끝냈다. 불평과 불만, 원망, 갈등 같은 부정적 마음으로 살면 될 일도 안 된다.(웃음)
-하고 싶은 말은.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는 “친절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며 모든 비난을 해결한다. 얽힌 것을 풀어헤치고 곤란한 일을 수월하게 하고 암담한 것을 즐거움으로 바꾼다”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요즘 취업난 등으로 사람들 고민이 많다. 그러다보니 자기 비하나 비난을 많이 한다. 이건 자신의 에너지만 소진시킨다. 긍정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카카오 톡이나 트위트 같은 SNS는 안하나.
▲간단한 문자만 주고받는다. 카카오 톡이나 트위트는 명상에 방해가 된다. 정보화시대지만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도 필요하다. 디지털에 중독되면 안 된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자'다. 그래서 이메일 주소가 '지금 여기(here now)365'다. 좌우명과 이메일이 같다. 지금 여기에 깨어 있어 행복한 것이다. 진리는 다른데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취미는 산책과 운동이다. 중국에서 명의 화타가 만든 오금희(五禽戱)와 태극권, 요가, 소리명상 등이 취미다. 오금희는 중국 명의 화타가 호랑이, 사슴, 곰, 원숭이, 새 등 다섯 마리 동물의 노는 모습을 모방해서 만든 운동이다.
미산스님은 불교계 대표적 학승이자 명상 전문가다. 12살에 단명한다는 말을 듣고 백양사로 동진(童眞) 출가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했다. 운문선원과 봉암사 등지에서 참선수행을 했다. 12년 간 인도와 영국, 미국 등지에서 공부했다. 스링랑카와 인도에서 5년간 공부했고 옥스퍼스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년간 미국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하트스마일명상을 창시했다. 귀국 후 백양사 참사람 수행원장과 대한불교 조계종 사회부장, 중앙승가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상도선원 선원장이다. 저서로 '미산스님 초기경전강의'와 '인생교과서(공저)'가 있다.
이현덕 대기자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