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합병 비율을 문제 삼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이번엔 현대차그룹 지배 구조 개편안에 브레이크를 걸며 '선전포고'를 했다. 기업 경영상 허점을 파고들어 이익을 취하려는 성향을 보여 온 엘리엇이다. 앞으로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엘리엇 계열 투자 자문사 엘리엇어드바이저스홍콩은 3일(현지시간) 공식 성명을 내고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에 10억달러(약 1조500억원) 규모의 보통주를 소유하고 있다”면서 “주요 주주로서 현대차그룹이 개선, 지속 가능한 기업 구조를 향한 첫발을 내디딘 점은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그러나 “회사와 주주를 포함한 이해관계인을 위한 추가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특히 현대차그룹 계열사별 △기업 경영 구조 개선 △자본 관리 최적화 △주주 환원 달성 계획 등 더욱 자세한 로드맵을 공유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같은 엘리엇의 행보는 지난 2015년 6월 삼성 기습 때와 흡사한 방식이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 지배 구조 개편에는 환영한다는 뜻을 보였지만 다른 속내가 있다는 관측이 분분하다.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흡수합병 당시 합병 비율을 문제 삼아 소송전을 불사하던 엘리엇은 외국계 투기 자본이다. 고수익을 목표로 한 만큼 현대모비스의 일부 사업부 분할·합병 과정에서 손해가 우려된다고 판단하면 경영 간섭에 나설 가능성이 짙다. 이 과정에서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에 배당성향 확대 등 주주 수익 제고 방안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은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등 현대차그룹 3개 계열사의 지분 1조원 이상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분율이 5% 이상이면 공시 의무가 발생한다. 그러나 공시 대상에 엘리엇이 포함되지는 않아 3개 회사 보유 지분율은 각 5% 미만으로 추정된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우선 목표는 배당 확대에 따른 투자 수익 제고로 보인다”면서 “현대모비스의 임시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에 목소리를 내면서 밀고 당기기를 계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현대차그룹이 현대모비스의 임시주총 이전에 지배 구조 개편 관련 로드맵을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합병 비율을 문제 삼아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흡수합병을 반대한 전례를 볼 때 이 같은 계획이 나오지 않으면 엘리엇이 현대차그룹 지배 구조 재편 반대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기업 가치를 제고하고 투자자 이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지속 노력하겠다”면서 “국내외 주주들과 충실히 소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임시 주주총회는 5월 29일로 예정돼 있다. 합병은 주총의 특별결의 사항으로서 참석 주주 3분의 2 이상 찬성, 발행 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으로 통과된다.
현대모비스 주주(보통주) 구성은 지난해 말 기준 기아차 16.88%, 정몽구 현대차 회장 6.96%, 현대제철 5.66%, 현대글로비스 0.67%, 자기주식 2.72%, 기타 주주 67.11% 등으로 돼 있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