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적정성 논란에 휩싸인 파이로프로세싱·소듐냉각고속로(SFR) 연구개발(R&D) 사업을 재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지난해 국회가 계속 추진에 문제를 제기하며 '조건부 예산'을 배정한 사업이다. 국회는 재검토 후 추진을 주문했다. 재검토 과정마저 파행으로 얼룩져 사업 재개 결정 이후에도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27일 관가와 정치권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파이로·SFR 재검토위원회 활동을 마무리하고 재검토 결과 보고서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했다. 재검토위는 사업을 재개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과방위는 재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와 사업 재개를 협의한다.
파이로·SFR 사업은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기술(파이로프로세싱)과 재처리한 연료를 사용해서 전력을 생산하는 차세대 원자로(SFR) 기술을 확보하는 게 목적이다. '핵 쓰레기'로 불리는 사용후핵연료를 효율 높게 처분하고, 발전에도 활용하는 아이디어다.
우리나라는 2008년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하고 한국원자력연구원 주축의 사업단을 구성, R&D를 시작했다. 그러나 SFR는 오랜 기간 연구에도 세계에서 상용화 성공 사례가 없고 성과도 미진,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짝을 이루는 파이로 기술은 핵 확산 논란을 낳았다.
이 때문에 국회는 지난해 예산 심의 과정에서 관련 R&D 예산을 '수시 배정'으로 묶고 사업을 보류했다. 사업 적정성 여부를 객관 재검토하고, 그 뒤에야 예산을 집행하라는 주문이다.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12월 비원자력계 전문가 7명으로 재검토위를 꾸리고 재검토에 착수했다.
재검토위는 이번 재검토 결과 보고서에 사업 재개를 명시했다. 파이로·SFR 모두 2020년까지 R&D를 지속할 것을 권고했다. 두 기술이 상호 활용 관계에 있는 만큼 분리 추진할 수 없다고 봤다.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을 검증하는 한·미 공동 연구 결과가 나오는 2020년 이후 사업 추진 여부를 다시 판단하라고 주문했다.
우선 올해는 국회에서 확정한 예산을 모두 집행하라는 게 결론이다. 2020년까지도 적정 규모의 R&D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됐다. 다만 파이로·SFR 외에 다른 기술 옵션도 다양하게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 수용성 제고, 연구 효율·신뢰 향상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당부했다.
정부와 재검토위가 사업 재개를 결정했지만 갈등의 여지는 남았다. 원자력계 내부에서도 파이로·SFR 현실성 논란이 많다. 정부가 별도의 재검토 과정까지 거친 이유다. 해당 기술이 실증 단계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풀어야 할 난제가 많다는 게 중론이다.
재검토위 자체도 파행을 겪었다. 재검토위에 조언을 제공하는 반대 측 전문가단이 위원회의 밀실·불공정 운영을 지적하며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들은 사업 당사자인 과기정통부 소관의 재검토는 불공정하고, 과정을 비공개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결국 재검토위는 서면 질의 이후 반대 측 전문가단의 불참 속에 운영됐다.
과방위 소속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안전성, 기술성, 핵비확산성 중심으로 보고서를 면밀히 살피겠다. 재검토 공정성과 투명성에 논란이 큰 만큼 보고서가 충실하지 않다면 더 큰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이제라도 공론의 장에서 재검토 결과를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 최호 산업정책부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