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자율주행차를 실현하려면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반도체 안전성 검증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자동차에서 더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려면 반도체 설계 복잡성이 증가하고 공정이 미세해질 수밖에 없어 그간 고려하지 않은 가능성까지 포함해 자율주행차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큐알티(대표 김영부)가 1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빌트모어 호텔에서 개최한 '자동차 안전혁신 콘퍼런스(ASIC) 2018'에서는 반도체 설계, 제조, 패키징, 테스트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가 모여 자율주행차 안정성을 위한 기술 현황을 공유했다.
이날 행사에는 미항공우주국(NASA), 시스코, 애플, 화웨이, 웨스턴디지털, 스태츠칩팩을 비롯해 SK하이닉스, LG전자 등 초청받은 주요 기업 관계자 50여명이 참석했다.
야반트 조리안 시높시스 수석개발책임자는 자율주행차 개발 시 설계 복잡성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자동차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고성능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인포테인먼트 등 각 분야에 최적화된 여러 시스템온칩(SoC) 아키텍처가 필요하므로 전체 설계 복잡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는 “반도체 설계 단계부터 ISO 26262, AEC Q-100 등 기능 안전성, 신뢰성, 규제 준수를 비롯해 보안 문제까지 반영해야 위험을 최소화하고 품질을 극대화할 수 있다”며 “생산 비용은 줄이고 고성능을 구현해 높은 수율을 달성하느냐 여부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산업용 로봇, 고성능 드론 등 새로운 적용분야가 계속 등장하고 있어 이에 대한 보안과 안전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공립 그르노블 알프스 대학교 소속 국립연구기관 TIMA연구소를 이끄는 라울 벨라스코 박사는 자연에 존재하는 방사선이 집적회로에 영향을 끼쳐 오류를 일으키는 소프트 오류(Soft Error) 사례를 소개했다. 주로 항공 우주 분야에서 연구·적용이 활발하지만 대부분의 일반 산업에서는 소프트 오류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다. 올해 발효될 ISO26262 개정판에는 소프트 오류 허용 기준을 담을 예정이다.
우주에서 발생한 중성자, 반도체 내부 소재에 포함된 미량의 방사선 등이 소프트 오류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반도체가 고집적, 고성능화될수록 소프트 오류 취약성이 높아진다. 단순 오류를 일으켜 전원을 껐다 켜면 문제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심각한 경우 기기를 물리적으로 파괴시키기도 한다.
벨라스코 박사는 “소프트 오류 연구는 우주, 항공 등 특수 분야에서 제한적으로 수행됐지만 자동차는 다양한 환경에 노출돼 있고 자율주행차의 신뢰성은 운전자 생명과 직결하므로 방사선이 집적회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케빈 트란 SK하이닉스 기술마케팅 디렉터는 자율주행 수준이 레벨5에 가까워질수록 메모리와 저장장치 요구 수준이 급격히 증가한다고 강조했다. 차량 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보다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이나 자율주행차에서 요구되는 메모리 성능 향상 수준이 훨씬 가파르다.
그는 “자동차에서 새로운 D램 기술을 채택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며 “레벨3에서는 레벨 0~2단계보다 100배 이상의 메모리 성능이 개선돼야 하고 레벨 4~5단계 역시 3단계보다 1000배 이상 성능 향상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정성수 큐알티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소프트 오류를 테스트하는 JESD89A 기준과 ISO26262에 담길 새로운 오류 정의를 설명했다.
현재 세계서 소프트 오류 측정 설비를 갖춘 곳은 미국, 캐나다, 영국밖에 없다. 일반 기업이 측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은 미국이 유일하다.
이에 따라 큐알티는 프랑스 TIMA연구소와 협력해 국내외 기업이 소프트 오류를 측정하고 ISO26262 기준 충족을 인증받을 수 있도록 관련 사업을 준비할 방침이다. 이미 TIMA연구소와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정성수 CTO는 “실제로 국내서 만든 칩을 해외로 이송한 뒤 중성자에 의한 소프트 오류가 발생해 성능 이상을 일으킨 사례가 있다”며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에서 소프트 오류를 사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점차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산타클라라(미국)=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