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이 큰 주목을 끌었다. 꽃다운 나이의 이 대학생은 사실상 국가에 의해 생을 마감했다. 무자비한 폭력 앞에 그는 힘없는 소시민이었다. 당시 국가 권력은 막강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앞당겨졌다. 국가라는 이름의 폭력도 그만큼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대중의 관심을 받는 데 30년이 걸렸다.

그동안 권력에도 미세한 지각 변동이 있은 것이었다. 국가와 정부의 위상은 변함없지만 보이는 권력의 폭력성은 줄었다. 그 대신 폭력성은 일상과 일터 속으로 스며들었다. 거대한 국가 권력은 마이크로화됐다. 보이지 않는 제왕이 생겨났다.

2018년 봄 대한민국은 또 다른 권력과의 전쟁을 벌인다. 거대 국가 또는 정보기관과의 대결이 아니다. 미시 권력과의 갈등이다. 각계각층에 자리 잡은 보이지 않는 힘의 민낯이 속속 드러난다. 침묵하던 다수가 마스크를 벗고 외치기 시작했다. 문화예술계부터 의료계, 검찰, 교육계를 중심으로 연일 폭로가 쏟아지고 있다. 우리 사회 상류층 부조리 고발의 끝은 어디일까.

피해자들은 당시 현장을 떠날 수가 없던 삶의 무게를 담담하게 전한다. 그저 참을 수밖에 없는 가벼운 존재였다. 거대한 성벽 앞에 약자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먹고사는 문제가 달린 생존 이슈였다. 어떤 이에게는 본인의 미래가 걸린 일이었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게 설계된 구조에서 사회 약자의 선택지는 딱히 없었다. 위계에 의한 행동에 사회 지탄이 쏟아지는 이유다.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있는 밑으로부터 고발은 언제 진화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져 온 행위가 일시에 사라질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은 그리 쉽지 바뀌지 않는다. 전혀 다른 세상을 당장 내일 기대할 순 없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은 예상보다 힘이 세다. 한국판 '미투' 움직임은 우리 사회 민주화의 현주소를 반영한다. 힘의 지나친 불균형이 임계에 도달했다는 방증이다. 극한의 한계를 견디지 못해 자동 반사돼 튀어나온다.

30년. 영화 '1987'이 극장에 상영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국가 권력의 민주화에 걸린 시간으로 이해된다. 그랬다. 정권은 교체돼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사회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면서 나아간다.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국가다. 동계올림픽 종목인 스켈레톤처럼 초스피드로 발전했다. 1970∼1980년대 초고속 성장의 이면에 분배 문제가 제기됐다면 사회에는 '힘의 균형'을 조율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각 분야에서 구조 밸런스를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검찰, 연극계, 문화예술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녀 문제를 떠나 대학교, 군대, 병원 등 모든 영역이 여기에 해당한다.

2018년 한국판 미투 캠페인은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 그렇다. 갑작스러운 변신은 기대할 수가 없다. 다만 새로운 세상을 향한 작은 물방울은 될 것이다. 고도성장 이면에 가려진 사회 구조 민주화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필요할 때다. 30년 전 정부 기관에 의한 타살이 있었다. 앞으로 청춘들이 생을 마감하는 '사회 타살'을 줄이기 위한 미시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구조 결함 전반에 걸친 안전 점검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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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석 성장기업부 데스크 stone20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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