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신학기 캠퍼스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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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렬 한국저작권보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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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버릴 수 없는 전공 서적이 한 권쯤 있을 것이다. 빛바랜 종이를 넘기다 보면 풋풋한 봄날의 캠퍼스와 지성의 세계가 주는 자극이 생생하다. 요즘 대학생들은 종이책보다 전자책 형태의 교재가 더 익숙한 듯하다. 두꺼운 전공책을 강의계획안에 맞춰 셀프 분권하던 것도 옛말이고, 책상 위 태블릿PC와 전자펜이 익숙한 강의실 풍경이 되었다. 하지만 이 새로운 풍경 뒤에는 다소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전공 서적의 불법복제 역시 '종이책'이라는 실체 없이 더 빠르고 편리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복사집 시절에는 종이와 잉크가 필요하고 시간도 걸렸지만, 요즘은 스캔 애플리케이션(앱)이 순식간에 전공 서적을 PDF 파일로 변환한다. 공유도 즉각적이라 불법복제와 유통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의 조사에 따르면, 2024년 1학기 전자 스캔 교재 이용 경험이 있는 대학생이 83.3%에 달했고, 그 중 불법복제 PDF 공유로 추정되는 비율이 40% 가까이 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학생들의 저작권 보호 인식이다. 불법 PDF 교재의 저작권 위반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물어본 결과 10명 중 8명이 알고도 활용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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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우리가 지식을 '공부'가 아니라 '학문'으로 맞이하게 되는 곳이다. 외우고 문제 푸는 공부에서 해방돼 탁월한 사상과 생각들, 이론들을 접하고 자기 생각도 키우면서 학문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장 고양되는 시기인 것이다. 누구보다 지성과 창의력의 편에 서야 할 대학생들이 타인의 학문적인 노력이 집약된 저서와 교재를 “비싸고 무겁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불법복제 한다는 것은 참 걱정스러운 현상이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은 대학생들의 저작권 보호 인식 제고를 우선 과제로 보고 지난해부터 '대학생 저작권 지킴이'를 선발하고 있다. 선발된 학생들이 직접 다양한 저작권 보호 콘텐츠를 제작해 홍보하고, 대학교재 등 불법복제물을 적발하는 온라인 모니터링 요원으로도 나선다. 지난해에는 학생들이 직접 기획해 어린이 저작권 보호 교육을 펼치고, 국회에서 열린 '대학생이 말하는 불법복제' 토론회에 발제자와 패널로 의견을 내는 등 오프라인 활동도 활발했다. 올해는 인원을 60명으로 더 늘려서 운영할 계획이다.

한편으로는 대학가의 변화한 저작권 침해 행태를 분석하기 위해 지난해 전국 499개 무인 스캔방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술적·제도적인 저작권 보호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올해는 학원가 등 사교육 기관으로 범위를 넓혀 저작권 보호 인식 조사도 진행할 계획이다.

대학교재 불법복제는 가벼운 일이 아닌 명백한 '불법'이고, 학술 출판업계를 사멸시킬 수 있는 중대한 위협이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은 '저작권침해종합대응시스템'을 통해 온라인상의 불법 PDF 교재를 상시 적발하고 있으며, '저작권보호심의위원회'를 통해 에브리타임과 중고거래 사이트 등에 유통 중인 불법 PDF 교재에 대한 삭제, 전송중단, 복제·전송자에 대한 경고의 시정권고 조치를 단행하고 있다. 향후 '저작권침해종합대응시스템'이 고도화되면, 권리자들이 시스템에 접속해 불법복제물의 적발부터 심의, 시정권고 현황까지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일반 국민들에게도 시스템을 통해 저작권 침해 사례와 관련 법규, 각종 통계 등 다양한 저작권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저작권은 이미 국가 경제와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지표가 됐다. '넥스트 반도체'로 주목받을 정도의 고부가가치 산업이면서 환경오염, 기후변화 이슈에서도 자유로운 미래 자원이다. 미국 IIPA 발간 '미국 경제의 저작권 산업보고서'에 따르면 저작권 산업이 GDP의 14.3%를 차지한다. 우리나라도 한국저작권위원회 '한국 저작권 산업의 경제기여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10.17%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니 K컬처의 세계적 인기 속에 미국 수준에 육박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수출 규모도 상당해서 지난해 상반기에만 저작권 분야에서 13.4억달러(1조9323억원 상당)의 흑자를 기록했다. 우수한 '콘텐츠 창작'과 철저한 '저작권 보호'는 자전거의 두 바퀴와 같다. 두 바퀴가 균형을 잡아야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뿌린 것(우수한 콘텐츠)을 그대로 거두려면 저작권 보호에도 그만큼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책은 얼어붙은 영혼의 바다를 깨는 도끼”. 현대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란츠 카프카의 말이다. 봄꽃 피는 캠퍼스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귀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대학생들이 배움과 영혼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또, K컬처 시대를 사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저작권에 대한 존중과 책임 의식을 갖춘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박정렬 한국저작권보호원장 jypark@kcopa.or.kr

〈필자〉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듀크대 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를 취득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정책실장, 해외문화홍보원장, 국민소통실장, 대변인, 미디어정책관 등을 역임했다. 오랜 문화예술 정책 경험에 기반한 한류 콘텐츠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다양한 해외 업무 경험을 활용해 우리 문화예술 콘텐츠의 국제적 저작권 보호에 힘쓰고 있다.

박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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