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열린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가 시민단체의 퇴장으로 파행됐다. 보편요금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시민단체, 이동통신사가 합의점 도출에 실패했다. 협의회는 보편요금제뿐만 아니라 기본료, 완전자급제 등 주요 논의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3개월 활동을 접는다.
협의회 출범 때부터 예견된 결과다. 협의회는 통신비 경감과 경쟁 활성화 방안 논의를 목적으로 출범했다. 주요 현안인 '통신비 이슈'를 각계 논의를 거쳐 해결하자는 취지는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최대 화두인 보편요금제는 민간 사업자의 고유 영역인 요금을 협의로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비난이 비등했다.
협의회가 통신비 경감 논의의 구심점이 될 수는 있지만 요금 체계에 직접 개입한다면 논란이 커질 것이란 지적이 거셌다. 이는 '통신 서비스가 필수재인지'에 대한 사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신 서비스가 국방, 경찰, 소방 같은 '공공재'는 아니라 하더라도 모두가 써야 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필수재'로 봐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정부가 통신 요금 결정에 직접 간여할 수 있다는 판단의 근거다. 통신 발달로 전 국민이 유무선 통신 서비스를 사용하기 때문에 맞는 얘기일 수도 있다.
통신 서비스가 필수재라고 확정해서 말하기 위해선 앞으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통신 서비스에는 음성 통화나 문자만 있는 게 아니다. 메신저나 웹 서핑 등 다른 통신 서비스가 국민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재인지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에 따라서 보편요금제 도입을 위해선 먼저 통신 서비스의 필수재 여부 연구와 합의, 필수재라면 어느 범위(종류)까지 포함시켜야 할지 정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6월 보편요금제 법률(안) 제출과 이후 입법 과정에서 사회 논란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보편요금제와 같은 인위 정책이 이통사의 반발은 거세고 효과는 크지 않다는 점이다. 풍선 효과 때문이다. 지난해 선택약정할인 할인율을 20%에서 25%로 상향한 이후 이통사는 멤버십 혜택을 대폭 축소하고 있다. 손실 보전을 위해 부가 서비스를 줄이고 신규 요금제 수준을 높일 것이란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가계통신비 경감을 위한 정부의 역할은 명확하다. 인위가 아닌 경쟁을 통한 통신비 인하다. 정부가 매년 발표하던 '이통 시장 경쟁 촉진 방안'은 지난해 통신비 인하 공약에 묻혔다. 지금부터라도 가계통신비 경감 정책의 초점을 통신비 직접 인하가 아니라 경쟁 활성화에 맞춰야 한다.
제4 이통은 차치하고라도 알뜰폰에 힘을 실어 주면 된다. 알뜰폰에 유리한 롱텀에벌루션(LTE) 고가 요금제 도매 대가 협상 유도나 도매 대가의 상호 접속 대체가 방안이 될 수 있다. 이통사 요금을 낮추고 보편요금제를 대체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볼 수 있다.
중장기 정책도 필요하다. 요금 경쟁과 신규 기술·서비스 도입 활성화, 규제 완화 등 5년 후를 내다보는 통신 대계를 수립해야 한다. 통신 산업의 본원 경쟁력을 기르는 길이기도 하다.
대선 때마다 반복되는 '통신비 인하' 공약과 이행 과정에서의 갈등, 이제는 그만 볼 때도 됐다.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