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망 이용대가 협상 막판 진통···"협상의 묘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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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과 SK브로드밴드 간 접속경로 변경으로 촉발된 후 1년여를 끌어온 국내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와 페이스북의 망 이용대가 협상이 막판 진통을 겪고 있다.

정부 노력에 힘입어 페이스북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결국 요율 협상은 사업자 간 자율 영역이기 때문이다. 양측 이해관계를 꿰뚫는 절묘한 협상전략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달 말 인터넷 상생발전 협의체를 발족하고 망 이용대가는 물론 국내외 인터넷 기업 간 갈등을 중재할 근본 해법 찾기에 착수한다.

◇협상의 묘미 발휘할 때

국내 인터넷 트래픽은 급증 추세다. 무선 기준 스마트폰이 활발하게 보급된 2012년과 비교하면 5년 만에 6배 증가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동영상 트래픽이고 동영상 트래픽 다수는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사업자가 차지한다.

그럼에도 ISP가 글로벌 CP에 망 사용료를 요구하기 어려운 이유는 인터넷 트래픽을 둘러싼 시장이 철저히 '업계 자율 영역'이기 때문이다. '아쉬운 쪽'이 협상에서 '을'이 되는 것이다. 국내 소비자가 유튜브, 페이스북 등의 콘텐츠를 좋아하는 한 국내 ISP는 글로벌 CP와 협상에서 을이 될 수밖에 없다. 국내 망 이용대가 협상 기준이 되는 '인터넷 전용회선 이용약관'이 소용이 없는 이유다. 국내 CP가 '역차별'이라고 반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악의 사태를 염두에 두면 이해가 쉽다. 글로벌 CP는 한국 시장에서 영업이 어려우면 사업을 철수하면 된다. 아쉬운 쪽은 국내 ISP다. 미국 등 해당국까지 국제회선을 빌려 콘텐츠를 끌어와야 할 수도 있다.

글로벌 CP도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망 이용대가 갈등을 이유로 특정 국가에서 철수하는 것이 결코 좋은 이미지를 남길 리 없다. '인터넷망에 무임승차하는 이기적 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달릴 수 있다. 망 이용대가 갈등이 발생하는 곳마다 철수할 수도 없다. 가상현실(VR) 등 고화질 동영상 서비스가 중요해지면 망 이용대가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어느 시점에는 타협을 해야 한다.

망 이용대가 협상이 중요한 이유는 향후 다른 글로벌 CP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구글 망 이용대가 재협상 시점이 오고 있고 넷플릭스 등 국내 시장에 신규 진출하거나 진출을 확대하는 업체에 '전례'가 될 수 있다.

망 이용대가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네트워크 투자 비용이 고스란히 통신 이용자에게 떠넘겨질 수 있다.

통신사 관계자는 “인터넷 세상은 '트래픽 가진 자가 왕'이라고 할 정도로 철저히 약육강식의 세계”라면서 “서로 이해관계를 분석해 협상의 묘를 발휘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인터넷 상생협의체 가동···'국내 대리인 지정제도' 주목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말 내놓은 2018 업무계획에서 '인터넷 상생발전 협의체'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협의체 주요 임무 중 하나가 '국내외 인터넷 기업 간 역차별 해소'다. 협의체는 설연휴 직후 국내외 인터넷 기업과 통신사, 콘텐츠 사업자, 소비자 단체, 학계, 정부, 법률전문가 등 20~30여명으로 출범할 예정이다. 해외사업자에 대한 규제집행력을 확보하고 망 이용대가 합리화, 부가통신사업자 규제 개선 등이 목표다.

글로벌 사업자 규제를 위해 가장 주목되는 정책은 '국내 대리인 지정제도'다. 김성태 의원(자유한국당)이 제안한 제도는 일정 규모 이상 해외사업자가 국내서 영업할 때 반드시 법률 대리인을 두도록 하는 것이다.

방통위는 제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유럽연합 일반개인정보보호법(EU GDPR)을 참고하기로 했다. 5월 시행되는 EU GDPR는 EU 내 활동하는 해외기업이 개인정보보호 관련 법률 대리인을 역내에 두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이를 위반하면 과징금이 최고 2000만유로(약 270억원·글로벌 매출액 4%)에 달할 정도로 강한 규제다. EU 내에 사업장을 두지 않은 기업도 개인정보 관련 규제를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EU GDPR 방식을 채택하면 국내 대리인 지정제도에 제기된 많은 비판을 피할 가능성이 있어 주목된다. 국내 대리인 지정제도는 국내에 유한회사가 있다는 점, 고정사업장에 해당하는 서버가 해외에 있다는 점, 부가통신사업자를 별도 사전 규제하는 국가는 없다는 점 등이 비판 대상이었다. 하지만 EU GDPR 방식을 채택하면 본사가 해외에 있는 업체라도 정부가 규제 권한을 확보할 수 있다. EU GDPR와 동일하게 개인정보 보호가 명분이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반대할 명분이 약하다.

국내 대리인 지정제도는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해야 한다. 국회 역할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대리인을 지정해야 하는 글로벌 기업 규모나 대리인 책임 한계 등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