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컨트롤타워인 과학기술혁신본부가 또다시 벽에 부닥쳤다. 국가연구개발특별법 제정, 기초·원천 연구개발(R&D) 통합 수행 등 굵직한 개혁 과제가 타 부처의 반대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과기혁신본부는 지난해에도 국가 R&D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이관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6일 관가에 따르면 교육부를 비롯한 복수 부처는 최근 국무조정실에 기초·원천 R&D 수행 주체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일원화하는 국정 과제에 이견을 제출했다. 국무조정실은 조만간 중재안을 마련, 관련 부처에 통보할 예정이다.
기초·원천 R&D 일원화 과제는 '자율과 책임의 과학기술 혁신 생태계 조성' 일환으로 마련됐다. 과기 총괄 부처의 기능 강화, 국가 R&D 효율성 제고가 목적이다. 기초연구 강화 기조와도 연관이 깊다. 기초연구 지원 확대를 위한 '구획 정비' 성격이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총리 주재 업무보고에서 추진 시점을 연내로 못 박았다. 국정 과제에 따르면 앞으로 기초·원천 R&D 사업은 과기정통부가 모두 수행하고 나머지 부처는 특정 산업 수요 기반의 R&D만 수행한다.
해당 업무 소관은 과기정통부 과기혁신본부 내 연구개발투자심의국이다. 심의국의 업무는 정부 주요 R&D 예산의 배분·조정이다. 국정 과제대로라면 심의국은 차년도 예산안 수립 때 각 부처에 산재한 기초·원천 R&D 실링(예산 한도)을 취합해서 과기정통부 1차관 쪽으로 배분해야 한다. 심의국은 내년도 예산안부터 이 방침을 적용할 계획이다.
과기혁신본부 관계자는 “기초·원천 R&D 통합 수행은 별도의 법 개정 없이 예산 배분 과정에서 추진할 수 있다”면서 “기초·원천에 해당하는 사업에는 신규 예산을 배정하지 않고, 일몰되는 사업의 예산도 과기정통부로 이관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사업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고, 부처 간 이견도 있을 수 있어 각 부처가 내년도 예산 수립에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협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기혁신본부가 사실상 정부 내 전 부처를 상대로 담판을 벌여야 하는 형국이다. 교육부뿐만 아니라 국가 R&D를 수행하는 대부분의 부처가 일부 사업·예산을 과기정통부로 이관해야 한다. 해당 부처 입장에서는 자기 사업을 '빼앗긴다'는 인식이 강하다. 교육부가 가장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연구개발특별법 제정도 올해 과기혁신본부가 떠안은 난제다. 특별법은 각 부처에 흩어진 연구 과제 관리 규정을 1개 법률로 통합하는 게 골자다. 과기정통부는 이들 규정이 122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했다. 난립한 규정 탓에 연구 현장의 행정 부담이 가중된다는 지적이 높아 국정 과제에도 채택됐다.
과기정통부는 이 역시 연내 추진을 발표했다. 특별법은 그동안 실효가 적은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공동관리규정)을 법률로 격상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짙다.
여러 부처의 소관 규정을 다뤄야 한다는 점에서 부처 간 갈등이 예상된다. 특별법은 연구 관리 전문 기관으로서의 역할과 요건도 담을 것으로 전망된다. 12개 부처 17개 기관을 10개 부처 10개 기관으로 재편하는 큰 틀 안에서 이뤄지는 작업이다. 이 역시 부처 간 갈등이 첨예한 사안이다.
과기혁신본부는 지난해에도 예타권 이관을 둘러싼 부처 간 갈등의 중심에 놓였다. 국무조정실과 당·청 지원에 힘입어 힘겹게 국정 과제를 관철시켰다. 그러나 자체 조정력이 약한 탓에 실링 공동 설정 권한이 빠지는 등 정책이 후퇴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