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02> 에라토스테네스 방식

기원전 230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한 사서가 있었다.

그는 틈틈이 소수(素數)를 찾곤 했다.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찾아낼 수 있을까. 하루는 사람들이 나락을 모아서 체질하는 모습을 본다. 따라해 보기로 했다. 2부터 가능한 한 많은 수를 종이에 써 보았다. 그다음 2에서 시작해 두 칸씩 건너뛰며 숫자를 지웠다. 다음은 3에서 세 칸씩, 그다음은 5에서 다섯 칸씩, 다음은 7에서 일곱 칸씩 그렇게 계속 반복했다.

놀랍게도 어떤 숫자까지 걸러낸 후 남아 있는, 그 숫자의 제곱보다 작은 수들은 모두 소수였다. 이 간단한 방법은 그의 이름을 따서 '에라토스테네스의 체(Sieve of Eratosthenes)'로 불린다.

기업은 성장을 원한다. 새 기술, 새 제품, 새 블루오션 시장은 성장에 필수 요소다. 익숙한 기술로, 잘 알려진 시장에서, 별다를 것 없는 제품으로 경쟁하는 것은 성장을 탐닉하기에 뭔가 부족해 보인다. 과연 그럴까.

프랑스 인시아드(INSEAD)의 카란 지로트라, 세르게이 네테신 교수는 한 가지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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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마크 로어와 비닛 바라라는 다이퍼즈닷컴(diapers.com)이란 조그만 인터넷 스타트업을 연다. 취급품은 단 하나. 기저귀였다. 주변 사람들은 의아했다. 상식에 맞지 않았다. 이커머스의 기본은 배송이다. 기저귀와 배송은 어울리지 않는다. 기저귀란 가격 대비 부피가 무척 큰 물건이 아닌가. 게다가 어디든 판다. 당연히 마진도 클 리 없다. 그러나 설립한 지 고작 5년 지난 2010년 11월 아마존은 퀴드시(Quidsi)란 이름의 이 기업을 5억4500만달러에 인수한다.

무슨 일이 있은 것일까. 지로트라와 네테신 두 교수는 그 사연을 알면 비즈니스 모델 디자인이란 것이 보인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한 우물 파기다. 퀴드시는 기저귀만 취급했지만 5년에 무려 5억장을 팔아치운다. 거기다 정작 수익은 다른 곳에서 왔다. 단골 고객들에게 2만5000개나 되는 다른 제품을 선보였다. 깊고 좁음에서 시작된 파괴력에 아마존도 손을 들었다. 신발만 취급하던 자포스(Zappos)도 인수하는 것으로 경쟁을 무마했다.

두 번째는 공통점 찾기다. 아마존을 보자. 책으로 시작했지만 금세 음반, 비디오, 게임으로 넓혔다. 물건만 달랐을 뿐 동일한 비즈니스였다. 폭스바겐도 마찬가지다. 부품은 물론 차대 몇 개로 거의 모든 차를 만들기로 유명하다.

세 번째 방법은 헤지 포트폴리오 짜기다. 칠레의 란(LAN)항공은 고민스러웠다. 칠레에서 미국을 거쳐 유럽으로 가자니 승객이 들쭉날쭉했다. 화물도 마찬가지였다. 가만 보니 이 둘은 서로 상관성이 없었다. 화물 비중을 오히려 늘리니 문제가 잦아든다. 거기다 다른 항공사가 놓친 노선에서도 수익이 생겼다. 위험도 줄이고 비어 있는 시장도 찾을 수 있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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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혁신이란 남 얘기일까. 여러 경영 구루들의 조언은 그렇지 않다. 퀴드시는 바로 그런 사례였다. 초점을 맞춘다는 한 가지 방법으로 아마존과 너끈히 경쟁했다.

어쩌면 혁신에도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란 것이 있을지 모른다. 요술방망이처럼 만능인 것은 없겠지만 몇 가지만 잘 찾아들면 보물찾기가 쉬워진다. 라틴어로 '만약 그랬다면(What if)'이란 뜻의 퀴드시가 찾아낸 것도 그것인 셈이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