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01> 어느 문고 이야기

사기, 한서, 후한서, 진서, 송서, 금사, 원사, 명사. 모두 저명한 중국 역사서다. 어느 한 문중의 장서 목록치곤 범상치 않다. 여기엔 한 가지 사연이 있다.

1910년에 경술국치를 당한다. 나라는 망했으되 백성은 남았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문영박은 중국 상해에 있던 친구 김택영에게 편지를 썼다.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기꺼이 책을 골라 배편에 실어 보냈다. 상해에서 출발해 목포항에 닿으면 소달구지에 실어 남원으로, 다시 함양과 거창을 지나 대구로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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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1935년 동아일보 장서답사기에서 “조선의 문중 서고 얘기를 하자면 몇 손에 꼽아야 할 것 중 하나가 대구 인흥리에 있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혁신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사례는 서로 다른 얘기를 한다. 누군가에게는 우연함이 한몫했다. 다른 기업에는 계획된 노력의 결과였다. 이렇듯 다른 것일까. 아니면 누구에게나 열린 혁신 공간이란 것이 있을까.

한 사회생태학자는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았다. 첫째는 의외의 상황이 만드는 기회였다. 초창기 컴퓨터는 고등수학용이었다. IBM은 급여 처리를 고심하던 기업을 떠올렸다. 모델 604는 5600대나 팔렸다. 실패도 기회이긴 마찬가지다. 자동차 역사상 최대 실패작은 포드의 에드셀이다. 시장 분석은 완벽했다. 그러니 애초부터 없었어야 할 실패였다. 결과를 곱씹으며 포드는 '라이프 스타일'이란 것에 눈을 뜬다. 무스탕이란 걸작이 그 결과다.

둘째는 상식의 모순을 극복할 때다. 해운업의 수익성이 떨어지자 모두 속도와 연료비를 탓했다. 해운사와 조선사가 의기투합한다. 그러나 별 소득이 없다. 나중에 보니 정작 문제는 선적과 하역에 드는 시간이었다. 항구에 묶인 채로 수익을 날리고 있었다. 짐 실은 트레일러를 통째 태우는 로로선이나 컨테이너선으로 바꾼 후 오랜 호황을 맞는다.

셋째로 새로운 수익 모델은 그 자체로 혁신이다. 신문의 성공 뒤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시작은 자동 주조 식자기가 했고, 유가 광고가 완성시킨다. “신문 한 부에 1센트보다 적게 받을 수는 없어요”라는 윌리엄 허스트의 너스레 뒤에도 광고 수입이 있었다. 정작 미디어를 산업으로 만든 것은 기술이 아니라 광고였다.

넷째는 새로운 인식이 만드는 기회다. 그것이 기술이든 시장이든 고객이든 새로운 개념은 혁신 기업에 기회가 된다. 현대 은행을 구현한 것은 존 피어폰트 모건과 게오르크 지멘스지만 그 뒤에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이란 지향점이 있었다. 공유경제도 마찬가지다. 집카, 우버, 에어비앤비도 여기서 혁신을 시작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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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는 생전에 자신을 사회생태학자로 불렀다. 그런 탓일까. 탐구 대상은 기업만이 아니었다. 외판원·외과의사·언론인·학자, 심지어 작곡가까지 탐색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내린다. 혁신은 기회를 확인하고, 올바른 방법을 찾아 노력한 결과다. '실용성 영감'이란 절묘한 설명을 붙인다.

나라 잃은 한 사람이 바란 것도 이것인 듯하다. 어떻게 망국의 한을 풀까 생각했다. 고민 끝에 찾은 해답은 교육이었다. 그 첫째는 지혜와 지식을 모으는 것이었다. 이렇게 모은 것이 2만권 분량의 '인수문고'가 됐다. 드러커가 말한 혁신 과정과 무척이나 닮았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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