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 후방산업 경쟁력 제고 위한 테스트베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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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근 신임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좌교수)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후방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테스트베드 구축 논의를 시작하자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gphoto@etnews.com

“한국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은 단연 세계 최고입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부동의 1위였던 미국 인텔을 제치고 드디어 정상의 자리에 올랐죠. 여기에 만족하면 안 됩니다. 우위를 '초격차'로 벌려놔야 합니다. 장비, 재료, 부품 등 후방산업 경쟁력 확대가 절실합니다.”

박재근 신임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좌교수)은 3일 전자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 일본 등 기존 선진국은 통상 압력으로 한국을 견제하고 중국은 거대 자본을 앞세워 국내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잘 나가는 지금이 바로 위기”라고 진단하며 정상의 자리에서 머무르기만 한다면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과거 일본은 반도체 강국이었다. NEC, 히타치, 미쓰비시는 D램 분야 최강자였다. 도시바는 낸드플래시 원조 기업이다. 액정표시장치(LCD)를 세계 최초로 양산화한 곳은 일본 샤프였다. 이들은 모두 쓰러졌다. 일본 D램 3사가 합작해 만든 엘피다는 한국 기업과 경쟁에서 버티다 못해 미국 마이크론에 팔렸다. 원전사업 투자 손실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도시바는 낸드플래시 사업 매각 수순을 밟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여기에 일부 자금을 댔다. 샤프는 대만 홍하이그룹에 매각됐다.

일본 기업의 자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대체했다. 박 학회장은 “우리도 (중국에) 똑같이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LCD 분야는 출하량 면에서 중국이 한국을 추월했다. 올 연말이면 중국 현지 기업이 대만과 손잡고 메모리 생산도 시작한다. 기술력 차이가 상당히 크지만 공정 미세화가 한계치에 다다른 상황이어서 어떤 시점이 되면 추격을 따돌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박 학회장은 대기업 혼자가 아닌 생태계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탄탄한 후방 생태계를 만들어 국가 전체로 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에 대한 방편으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관련 후방산업 연구개발(R&D) 테스트베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장비, 재료 기업이 십시일반 재원을 모아 성능평가를 철저히 할 수 있는 팹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외국 후방업체는 대부분 대기업이어서 자체 평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국내 업계는 영세해 평가 인프라를 갖고 있지 않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공정 장비를 잠시 멈출 때(예방유지 보수시) 틈틈이 평가를 받는 것이 대부분이다. 관계가 없는 업체는 이마저도 힘들다. 커다란 진입장벽이 있는 셈이다. 국내 장비, 재료 업체 영업맨이 대부분 대기업 출신인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대기업과 함께하면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우선 개발하기 때문에 게임의 룰을 바꿀 수 있는 혁신형 제품이 나오기 힘들다. 공동 개발이라면 일정 기간 외부 업체로 판매도 금지된다.

박 학회장은 벨기에 반도체연구기관인 IMEC를 좋은 벤치마크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IMEC는 정부주도형이 아닌 기업처럼 운용되기 때문에 제대로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고 있다. IMEC는 세계에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가진 유일한 연구기관이다. 세계적인 노광용 포토레지스트(PR) 업체와 각종 부품 업체, 학계가 이곳에 인력을 파견해 R&D를 하고 있다.

박 학회장은 “반도체에선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세정, 증착 분야를 포함해 화학기계연마(CMP), 식각 공정 등 특화된 테스트베드를 만들면 효과를 볼 수 있다”면서 “정부도 이런 환경 구축에 재원을 보태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정부와 학계, 산업계가 주도하는 '반디 성장위원회(가칭)'를 만들어 이 같은 테스트베드 구축에 관한 구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테스트베드가 구축되면 학계 연구활동이 보다 활발해지고 고급 인력도 많이 배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재근 신임 학회장은 1985년부터 17년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서 기술을 개발했다. 등록된 개인 보유 특허만 147건에 이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일본 섬코, 미쓰비시 등 내로라하는 반도체 기업에 특허 기술을 이전한 이력을 갖고 있는 명실상부 이 분야 최고 전문가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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