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99> 위징의 조언

정관치세(貞觀之治). 당 태종 연간의 태평성대를 이른다. 명신이 즐비했다. 그 가운데 간의대부 위징(魏徵)이 있었다. 천하가 겨우 진정될 즈음 태종이 근신들을 불러서 물었다. “군주가 나라를 태평하게 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겠소.” 100년은 족히 필요하다고 모두 입을 모은다.

위징은 달리 답한다. “현명한 군주의 다스림은 높은 산에 올라 크게 소리쳐서 메아리를 듣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1년이라도 짧지 않고, 3년이면 족합니다. 굶주린 백성에게 어찌 100년을 기다리라 하겠습니까.”

게리 해멀 영국 런던경영대 교수는 혁신만큼 뜨거운 감자는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관심 있는 주제도 드물지만 그만큼 손에 잡기 어렵다는 의미다. 많은 기업이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묻는다. 기업이 따라할 원칙은 없을까. 조언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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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코닥이 출시하는 디지털카메라 '이지쉐어 LS755'.536만화소. 전문가급 슈나이더 크로이츠나흐 C-바리오곤 3배줌 렌즈와 21만화소의 고해상도 2.5인치 LCD를 탑재해 이미지를 선명하게 촬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첫째는 가치 혁신이다. 1975년 스티븐 새슨은 전하결합소자에 카메라와 카세트 레코더, 아날로그-디지털 변환기, 회로판 몇 개, 배터리 16개를 묶어 붙인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디카)를 만든다. 경영진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연구는 계속하되 유출되지 않도록 할 것”으로 결론난다. 코닥의 첫 디카 DCS 100은 1991년에야 출시된다. 발명과 혁신 사이에 틈이 있다. 가치 만들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둘째는 나만의 혁신 방식 찾기다. 기술 혁신과 비즈니스 모델 혁신은 확연히 다른 전략이다. 자원 제약이 있다면 혁신은 검박해야 한다. 비용 혁신이 필요하면 리버스 혁신이 한 방법이다. 경쟁에 지쳐 있다면 레드오션 벗어나기를 생각해 보라. 기존 제품에 생동감을 주고 싶다면 소비자 가치사슬을 따져 가는 방법이 제격이다. 많은 기업이 엉뚱한 골목길에서 헤매곤 한다.

셋째는 성장을 가로막는 병목 찾기다. 기업은 종종 산업의 오랜 관행에 갇힌다. 상식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고객 서비스는 정체되고, 당연한 듯 치르는 비용도 있다. 고객이 져야 하는 위험이 너무 큰 때도 있다. 이런 풍토병 속에 혁신이 숨어 있다.

넷째는 경쟁 생각 바꾸기다. 경쟁 기업과 기존 고객은 중요한 상대다. 그러나 여기에 매몰될 때 함정이 된다. 닌텐도 위가 찾아낸 고객은 비디오게임에 관심이 없던 다양한 연령층이었다. 거기다 새 고객이 느끼는 가치는 고만고만한 제품에 익숙한 기존 고객보다 높다. '비소비와 경쟁하기'를 생각해 보라.

다섯째는 플랫폼 싱킹이다. 아이폰 같은 플랫폼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디지털이나 다른 플랫폼을 입는 것은 한결 쉬운 선택이다. S.C.존슨&선처럼 파생 제품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반면에 코닥은 최초로 디카를 출시했지만 어떤 플랫폼도 제안하지 못했다. 코닥과 노키아 모두 경쟁에 밀려 미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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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는 혁신 리더십이다. 스티브 잡스의 열네 가지 리더십은 어떨까. 하이얼 장루이민의 '생선 다섯 근의 리더십'이나 화웨이 런정페이의 '누구도 가지 않는 곳을 찾는다'는 분투와 의지도 좋다. 학자들이 말하는 잘 짜인 이노베이션 아키텍트와 거리가 멀어도 혁신 모토 하나 정도는 나쁠 것 없지 않겠는가.

태종은 위징의 건의를 받아들여 조세와 부역을 가볍게 했다. 법을 엄정히 하되 사정을 살폈다. 위징의 쓴소리도 달게 들었다.

혁신도 마찬가지 아닐까. 성공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꼭 긴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자기에게 맞는 혁신을 찾고 바르게 실행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기에 오늘 시작할 때 변화는 앞당겨진다. 위징이 3년이란 시간을 콕 집어서 말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관의 치도 그렇게 시작됐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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