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설비 공동 활용 제도 부진은 이용자 선택권을 제한함은 물론이고, 통신비 부담으로 전가된다. 통신 사업자가 필수설비를 활용, 다양한 결합상품을 출시하면 이용자는 비교·선택, 통신비를 줄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현재는 필수설비 공동 활용 부진으로 통신사업자가 초고속인터넷 제공은 물론이고 결합상품 출시에 제약이 있다. 이용자는 통신비를 절약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일각에선 필수설비 공동 활용 활성화만으로도 가계 통신비를 상당부분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울 중구 회현동 남대문상가 인근에서 안경점을 운영하는 송병무(38세)씨는 초고속인터넷 문제로 수년째 골머리를 앓았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9년 전 5층 건물 1층에 안경점을 열 당시 SK텔레콤 휴대폰을 사용했던 그는 안경점에서 SK브로드밴드 초고속인터넷 상품을 선택, 결합상품 할인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KT 초고속인터넷밖에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는 4년 전 케이블TV 사업자가 제공하는 초고속인터넷으로 변경했다가 낭패를 경험했다. 초고속인터넷이 먹통이 돼 고객정보 검색이 안 될 정도였고, 인터넷전화까지 끊기면서 이틀 동안 영업을 못했다.
송 사장은 “인터넷 품질이 그렇게 엉망일 줄 몰랐다”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KT로 바꿨다”고 말했다. 이어 “남대문이 보이는 서울 한복판에서 초고속인터넷을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냐”며 반문했다.
송 사장과 가족의 이동통신 회선 3개와 안경점 초고속인터넷 상품을 묶어 결합할인을 받는다면 월 약 3만원, 연간 약 36만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3년간 100만원이 넘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CCTV 등 특수상품까지 포함하면 할인 금액은 훨씬 커진다. 송 사장은 “경쟁이 없으니 초고속인터넷 가격이 비싸다”면서 “지금이라도 기회가 되면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송 사장의 간절함에도 SK브로드밴드가 안경점에 초고속인터넷을 공급할 수 없는 이유는 '필수설비'가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른바 '라스트 1마일'로 부르는 마지막 인입관로다. 광케이블을 건물 앞까지 끌고 가더라도 인입관로가 없어 건물에 진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송 사장의 안경점도 불과 10미터 앞에 SK브로드밴드 광케이블이 있지만 필수설비가 없어 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하다. 케이블TV가 제공하는 초고속인터넷이 제 기능을 못하는데도 '대체재'로 인정돼 이 건물은 필수설비 의무제공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안경점이 입점한 건물처럼 특정 사업자 초고속인터넷만 제공돼 손해를 보는 건 송 사장 같은 소상공인이다.
후발사 커버리지가 미흡한 중소형 건물 또는 소상공인은 통신사 간 경쟁에 의한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휴대폰과 결합을 통해 통신비를 절감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통신사 간 경쟁에 따른 경품·사은품 등 통신요금 이외의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녹색소비자연대에 따르면 주요 대도시 구도심이나 중소 상공인인 밀집 지역에서 결합상품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유선통신 가입자는 6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합상품을 이용하지 않는 응답자의 44%는 유선통신 서비스 제공사업자가 달라 결합상품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와 함께, 중소상공인은 통신사 선택권 제한으로 약 7000억원(3년)의 비용을 추가 지불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