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41>생각이 있니, 없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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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나 입구에서 초등생 남자 아이가 엄마한테 야단맞고 있다. 엄마는 큰 소리로 몇 번이나 “생각이 그렇게도 없니?” 다그친다. 아이 얼굴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야단을 치는 것을 보니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엄마의 한 손에는 목욕바구니가 들려 있다.

“너 열 살이나 됐으면 생각이 있어야 될 거 아니니? 엄마가 여섯 살이라고 말하면 가만히 있을 것이지 왜 열 살이라고 옆에서 실토를 하는 거야? 그만큼 나이를 먹었으면 생각이 있어야 될 거 아니냐고! 왜 엄마를 망신시켜? 4000원 아끼면 절약되고 좋잖아!”

참 알뜰하다. 4000원 아끼자고 목욕탕 매표원에게 엄마는 아이 나이를 속였다. 아이는 매표원에게 자기 나이를 정정했다.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한 엄마가 아이에게 보복하는 중이다. 아이는 눈을 껌벅이며 자신의 '생각 없는 행동'을 후회하는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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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저 나이가 되면 생각이라는 게 있을 텐데, 우리 아이는 도무지 생각이 없어요.” 못 알아듣고, 들을 생각도 않고,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사춘기 자녀가 답답하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좋아하는 연예인에만 빠져 사는 모습이 한심하다. 곧 닥쳐올 암울한 미래에 불안함을 느끼는 건 부모 몫이다. 자녀와 대화만 하면 싸움으로 결말이 난다. 언제 철들지 걱정이 태산이다.

예순이 넘은 시어머니는 서른 넘은 며느리의 '생각 없는 행동'에 열불이 난다. 눈치라곤 조금도 없는 철부지 며느리가 답답하기만 하다. 일일이 가르치자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은 친정에서 교육을 안 시키니 저리도 눈치가 없다'며 친정부모 탓까지 한다.

어른이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나 자녀를 두고 '생각이 없다' '철이 없다'며 분통 터뜨리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말귀를 못 알아먹는 건지 이기적인지 모른다는 하소연이 넘친다. 자신은 처음부터 세상을 이해하고 삶의 지혜를 터득했던 것처럼 말한다. 누가 누구를 이해해야 할까.

인간의 사고는 지식, 정보, 경험에 의해 자란다. 목욕탕 10세 소년의 지식과 경험이 누적된 시간은 딱 10년이다. 아이는 10년치 지식, 정보, 경험으로 엄마와 소통해야 한다. 30여년 인생을 산 엄마의 깊은 뜻을 이해할 리 없다. 엄마가 30년 넘게 쌓은 타협, 눈치, 처세, 절약(모든 걸 융통성이라 하자) 등을 터득하려면 그녀가 산만큼의 세월이 필요하다.

사춘기 자녀가 생각 없다고 치부하면 오산이다. 몸에서 2차 성징이 일어나고 사고 용량은 커지는데 경험치 그릇은 고작 십수년이다. 어른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건 당연하다. 세대 간 소통이 어려운 건 경험자와 미경험자 마찰 때문이다. 경험자는 아니까 따지고 미경험자는 모르니까 덤빈다.

모든 자연 법칙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어른의 경험은 아랫사람을 훈계하고 윽박지르는 용도가 아니다. 그때 몰랐던 걸 지금 알게 된 지혜로 자녀, 며느리, 부하직원 눈을 맞추고 타일러야 한다. 소통을 잘 하고 싶다면, 자신이 그 나이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잠시 돌이켜 보는 것이다. 지금이 아닌 그때 그 시절의 나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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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나이에 맞는 행동을 했다. 나이를 속인 일로 반성해야 할 사람은 엄마다. 사춘기 소녀도 철부지 며느리도 눈치 없는 부하직원도 배운 만큼, 느낀 만큼 세상을 이해한다. 눈높이 대화란 상대방의 눈이 머무는 곳에서 함께 바라보는 세상이라야 비로소 가능하다.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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