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5주년 특집 Ⅲ]<9>에너지 전환, 전력시장 체질개선 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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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논쟁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에너지 정책 패러다임 변화가 요구되는 이유도 있지만, 가속화되는 신재생에너지 기술 진보로 에너지 전환 논의가 가능해진 측면도 있다.

정책이나 제도에 의해 기술개발이 이뤄지고, 또 기술에 의해 제도가 수정·확장하는 순환 관계가 동태적으로 진행되는 게 바람직하다. 경제와 기술의 주기가 혁신에 의해 결정된다는 조지프 슘페터의 사상이 이를 뒷받침한다.

에너지 전환 정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루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할 때다. 성형수술에도 목적이 있다. 미용을 위한 것인지, 건강한 체형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상처를 가리기 위한 것인지 목적에 맞게 한다. 에너지 포트폴리오 정책도 우리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작업이기에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전력 정책은 환경성과 안정성을 추구한다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기술혁신을 추구하는 '슘페터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미 도입됐거나 조만간 도입될 예정인 전력 부문 제도는 시장에서 혁신을 유도하기 위한, 이른바 시장 메카니즘 제도다. 배출권거래제(ETS),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RPS), 에너지 프로슈머, 스마트 그리드, 수요자원관리, 소비자선택요금제(RTP)등은 모두 가격 시그널을 주고받는 전력시장이라는 공통의 플랫폼에 의존한다.

앞으로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이 증가하면 간헐성 자원인 신재생발전을 보완하기 위해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확대돼야 한다. 이들은 전력 시장가격에 의존하는 기술이다. 기술이 시장기능에 의존한다면 전력시장 자체도 본연의 기능에 맞게 개선될 필요가 있다. 즉, 전력시장이 규제에서 시장기능 중심으로 발전해야 한다.

동의보감에서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라는 말이 있다. 기의 흐름이 원활할 때 아프지 않는다는 의미다. 우리 경제 체질도 제대로 개선되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가격 시그널이 원만히 소통돼야 한다.

온실가스나 미세먼지 같은 외부비용이 배출권거래제나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를 통해 소비자 가격에 제대로 반영된다면, 정책적으로 강요하지 않더라도 경제적인 인센티브에 의해 화력발전과 신재생발전 사이에 대체가 일어난다. 물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길 수는 없다. 부작용을 방지하는 세심하게 고안된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이들 정책은 시장에 간섭적이기보다는 경제주체의 합리적인 선택을 도와줄 때 비용효과적인 기술이 채택되고, 비용저감을 위한 기술혁신이 추구된다. 즉 슘페터적인 혁신이 이뤄진다.

합리적으로 잘 설계된 환경정책이 혁신을 유발하여 기업경쟁력을 오히려 향상시킨다는 하버드 경영학자 마이클 포터의 주장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향후 우리나라 에너지 포트폴리오 정책에서 기술혁신을 유도할 수 있는 시장기능 강화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얼굴은 슘페터지만 행동은 계획·통제경제 방식을 따르는 이상한 형태의 성형수술을 한 셈이 된다. 분권화를 키워드로 삼은 4차 산업혁명 단계로 성공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도 계획·통제보다는 자율적인 시장기능 강화가 선결과제임은 자명하다.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hjeongpark@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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